[매일일보 이재영 기자]복수의결권 법안이 산자위 소위를 통과해 입법 능선을 크게 넘었다. 전체회의 통과를 앞두고 시민단체들이 강력 반발하는 모습이다. 경실련 등은 차기 대선 후보들에게 복수의결권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며 이 법안을 재벌정책으로 보고 후보들이 노선을 정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벤처기업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법안이지만 기업형 벤처캐피탈(CVC)과 마찬가지로 양면이 있다. CVC는 대기업의 벤처시장에 대한 투자 유인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기존 대기업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 경제권력화를 막기 위해 도입된 금융그룹감독법 등 금산분리 정책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다. 재벌개혁 공약이 태생인 현 정부는 규제할 것은 하면서도 벤처산업 육성을 위해 감내할 부분도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비슷한 형태로 복수의결권 법안도 정부발의에 의해 입법 추진되고 있다. 벤처시장의 자본투자 유치를 위해 벤처기업의 족쇄를 풀어준다는 목적이지만 그동안 비상장사를 키워 경영권 지분 세습이나 편법 상속으로 활용했던 재벌 사례에 비춰 악용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경실련은 정부가 법안 수요 파악을 잘못했다며 벤처기업은 없어도 그만이지만 공짜 법안이니 있으면 좋다는 식이라며 이 법이 크게 필요없다고도 부정한다. 기존에도 벤처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할 수단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법안 수요 조사 모수나 수요 강도에 대해 애매한 면은 있다.
경실련은 법안 안전장치에도 재벌정책 무력화 역사에서 드러났듯이 선도입 후 규제완화로 가면 재벌세습 악용을 막기 어렵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벤처산업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면 차후 문제를 우려해 도입부터 막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요즘 대선 후보들이 네거티브 규제를 공약하며 지지율을 얻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국민감정도 도입 쪽에 부합하는 듯 보인다. 국정농단 사태 때문에 재벌개혁이 우선이었다면,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경제살리기가 우선인 시대다.
하지만 지배주주 일가가 작정하고 이 법을 세습 용도로 활용하려고 하면 못할 것도 없다. 대기업의 경우 사회적 감시가 높아져 그러기 힘들겠지만 중견기업 등 정보공개가 제한적인 기업집단에서는 악용될 수 있다. 법안은 30% 미만 주식 소유 벤처기업 창업주에게 복수 의결권을 허용한다. 안전장치는 상속 또는 양도 시, 이사 직 상실 시 등에 한해 복수의결권 주식을 보통주로 전환하는 내용이다. 또 이사 보수,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 감면 등 사항에 복수의결권을 제한한다.
가정하면, 비상장사 주식 20% 미만은 공정거래법 사익편취규제 대상에서 벗어난다. 창업주 소수지분 상태서 기업 규모가 커지면 경영권 위협이 생기지만 복수의결권이 지켜준다. 기업집단이 해당 집단에 지원성 거래를 해도 공정위 법망에 걸릴 위험도 덜하다. 그동안 세습에 활용해왔던 비상장사 육성법이 한결 수월해진다.
기업집단 사익편취규제만 해도 총수일가 지분이 있는 기업과 없는 기업 사이에 내부거래 편차가 크다. 또 법망을 아슬하게 벗어나는 수준에서 내부거래가 많은 현상도 뚜렷하다. 기업이 세습을 위해 편법을 쓰는 정황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법도 악용될 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벤처산업 육성의 실효성이 분명하다면 안전장치를 보완하면 그만이다. 그러면 다시 이 법이 진정 필요한지, 수요파악부터 제대로 돼야 한다. 정부는 시민단체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하고 경실련은 합의한 적 없다고 한다. 재계가 NDC 법안에 반대했음에도 정부가 의견을 반영했다고 말하며 통과시킨 사례와 다를 게 없다. 정부가 강행하는 결과가 최선인지도 의문이지만, 분명한 것은 절차적인 부분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