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슬로플레이션’ 가시화, 취약계층 보호대책부터 서둘러야

2021-12-07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박근종
[매일일보] 미국과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경제성장이 둔화하는 상황에서 물가 상승이 지속되는 현상인 ‘슬로플레이션(Slowflation)’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성장 속도가 더뎌지는 가운데 물가만 오르는 상황은 최소한 내년 중반이나 돼야 해소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와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발등의 불이 됐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9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3.7% 상승률을 나타낸 데 반해 국민총소득(GNI)은 5개 분기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함으로써 국민 호주머니는 비었는데 물가가 오르니 소비 여력은 떨어지고, 경기 회복세도 꺾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통계청이 지난 12월 2일 발표한 ‘2021년 11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2021년 11월 가구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 460개 품목의 평균적인 가격변동을 2015년도 100을 기준으로 측정한 소비자물가지수는 109.41(2015=100)로 전월 대비 0.4% 상승하였고, 전년 동월 대비로는 3.7%나 올라, 전월 3.2%보다 0.5%p 상승했다. 이는 2011년 12월(4.2%) 이후 9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며, 올해 들어서도 최고치다. 소비자물가는 10월에도 3.2% 올랐는데, 두 달 연속 3%대 상승한 건 2012년 1월과 2월 이후 9년 10개월 만이다. 석유류와 개인 서비스, 농·축·수산물 등의 가격이 일제히 오르며 물가 상승을 주도했다.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7% 상승하였고, 전년 동월 대비로는 5.2%나 올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크게 앞질렀다. 전년 동월 대비 식품은 5.4%, 식품 이외로는 5.1% 각각 상승하여, 채소나 육류부터 공공서비스와 석유류까지 안 오르는 게 없을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취약계층은 생계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장바구니 물가가 너무 올라 장보기가 겁나고, 치솟은 난방비 탓에 겨울나기가 걱정인 처지다. 반면, 한국은행이 같은 12월 2일 발표한 ‘2021년 3/4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2021년 3/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3% 성장(명목 국내총생산은 1.4% 성장)했고,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기 대비 0.7% 감소(명목 국민총소득은 0.1% 증가)했다. 성장률은 플러스를 기록한 데 반해 국민이 실제 손에 쥐게 되어 호주머니 사정을 반영하는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기 대비 0.7% 감소한 셈이다. 작년 2분기 이후 5개의 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이다. 교역조건 악화 등에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이 줄어든 영향으로 해석된다. 결국 소득은 주는데 이자와 집세 등 나갈 돈은 많다. 미래가 불안하니 그나마 있는 돈도 쓰지 않는다. 3분기 소비 성향(처분가능소득 대비 소비지출 비중)은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불안감이 지갑을 닫게 만들고, 이는 다시 경기둔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경기가 꺾이면 투자와 일자리가 줄고, 취약계층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2월 1일(현지 시간)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발표하고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월 들어 3.2%로 뛰었고 식료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의 경우 2.4%에 달했다.”라며 최근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 확산 상황을 반영해 한국을 포함해 대부분 국가의 물가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OECD가 제시한 올해 소비자물가 성장률 전망치인 2.4%와 내년 2.1%는 최근 발표된 전망치 가운데 가장 높은 축에 든다. 앞서 지난 1월 30일 글로벌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올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2.4%로, 내년도는 2%로 내다봤다.  한국은행도 지난 11월 25일 수정 경제전망을 내고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3%로 지난 8월 전망보다 0.2%P 상향 조정했고, 내년은 2%로 지난 전망보다 0.5%P 높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올해 2.3%, 내년 1.7%로 내다봤다. 이렇듯 내년에도 물가는 더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물가가 서민 살림을 짓누르는 상황이 장기간 지속된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한국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내년 1월 금리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금리 인상은 대출 이자를 늘려 서민 부담을 가중하게 될 것이 마치 불을 보듯 뻔하다. 설상가상으로 대출 규제로 돈을 빌리기는 더욱더 어렵다. 그야말로 저소득·저신용자 등 금융 취약계층에게는 이중·삼중고의 악재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저소득·저신용자 등 금융 취약계층이 ‘대출 난민’으로 전락해 불법 사금융으로 몰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의 전방위 대출 규제에 상대적으로 신용점수가 낮은 사람들이 주로 찾는 저축은행 같은 2금융권으로 고신용자가 몰리는 풍선효과 때문이다. 2금융권에 불어닥친 대출 한파에 저소득·저신용자가 급전을 빌리는 것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문제는 가계대출 총량 관리로 ‘돈줄 죄기’가 강화되는 내년이다. 저축은행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의 내년 가계대출 증가율을 회사별로 각각 10.8~14.8% 수준으로 제시했다. 올해 증가 폭의 최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또한, 내년에 대비해야 할 경영 리스크(Risk)로 비용(cost), 공급망(chain), 통화(currency)의 ‘3C’를 꼽는 대기업의 분석이 있는 가운데, 원자재가격과 물류비 상승에 따른 비용(cost) 증가, 반도체·요소수 대란 등으로 확인된 공급망(chain) 리스크, 각국의 통화(currency)정책 변화에 따른 환율 변동성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이른바 ‘신 3고(高)’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도 더욱더 커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2금융권의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기준이 현재 60%에서 내년에는 50%로 강화된다. DSR은 소득 대비 갚아야 할 대출 원리금 비율을 의미한다. 저신용자가 ‘급전 창구’로 활용했던 카드론도 내년에는 DSR 산정에 포함된다. 2금융권에서도 외면당한 저신용자 등 취약계층이 찾을 수 있는 합법 대출의 마지노선은 대부업체다. 하지만 대부업체마저 수익성 악화로 대출 심사가 깐깐해지고 있다. 지난 7월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인하되면서 ‘고객 고르기’에 나섰다는 얘기도 들린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대부업계의 지난해 대출 승인율은 2년 전인 12.6%보다 1.8%P 하락한 10.8%에 불과하다. 대부업체 문을 두드린 10명 중 겨우 1명 정도만이 돈을 빌릴 수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민금융연구원은 “2금융권까지 대출을 죄면 6등급 이하 저신용자는 설 곳이 없다.”라며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면 대부업체에서도 밀려나 불법 사금융시장을 찾는 사람이 10만 명을 넘어설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 맞춰 금융업계가 대출 공급을 줄이면 실수요자는 물론 금융 취약계층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금융당국의 과도한 전방위 대출 규제에 실수요자와 저신용자 등 취약계층이 불법 사금융시장으로 밀려나거나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면밀한 정책을 펼치고 정책금융으로 풀어야 한다. 엎친데다 겹친 격으로 공급망 위기에 ‘오미크론 변이(SARS-CoV-2 Omicron | Nu·B.1.1.529)’까지 닥치면서 글로벌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되었다. 국내 경기는 회복세가 꺾여 올해 성장률 목표 4% 달성도 쉽지 않아 보인다.  ‘슬로플레이션(Slowflation)’이 발등의 불로 가시화하면 저소득·저신용자 등 금융 취약 가계는 버틸 수 없게 된다. 정부는 607조 원의 ‘초 슈퍼급 예산’을 편성했다. 복지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저소득층 보호 대책부터 서둘러야 한다. 취약계층의 충격을 최소화를 위한 대출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을 유예하고, 과도한 예대마진의 폭리를 막고, 예측 가능한 ‘대출금리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등 유연한 선제대응은 물론 부채관리 정상화 과정에서 유발될 가능성이 큰 저소득·저신용자 등 금융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계부채 총량을 관리할 때 중·저신용자 대출을 한도에서 제외하거나 대출 한도를 충분히 담보할 수 있는 서민금융정책을 서둘러 마련하고, 예산 집행 과정에서도 구각(舊殼)을 제거하고 군살을 빼내는 구조조정과 실제로 필요한 곳에 즉각 투입하는 ‘핀셋 지원’을 통해 저소득·저신용자 등 금융 취약계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現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