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인 칼럼] 여전히 학벌 사회...그래도 변화는 시작됐다

2022-12-09     매일일보
원동인
지난 달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수능은 집안의 큰일이다. 자녀와 엄마 또는 아빠가 거의 한 몸이 돼 시험 준비에 매진한다. 친인척도 직장 동료들도 응원 대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능 시험일은 대한민국이 멈춰서는 날이다. 은행 개장 시간이 늦춰지고 영어듣기 시험 중에는 비행기가 상공에 머무르고 시험장 주변 열차는 경적을 못 울린다. 수능이 처음 실시된 것은 1994년이다. 암기 중심이라는 비판을 받던 대입학력고사를 없애고, 대학 수학의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수능은 대학입학을 위한 전형 자료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입학시험의 줄임말인 입시라는 표현은 여전히 남아 있고, 전형자료 중 하나인 수능의 영향력은 높아지고 있다. 국가교육회의 공론화 과정에서 수능은 ‘공정’의 대명사로 다시 부상하였고 정시모집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5개 보기에서 정답을 고르는 소위 ‘객관식’ 시험인 수능은 반복적인 문제풀이와 끝없는 보충학습으로 귀결된다.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을 살펴보자. 고3 수업이 파행이라는 점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수능 고득점을 위해 교사들은 EBS 교재와 문제풀이식 수업에 매달린다. 수능 점수가 필요한 학생들은 자습을 선호한다. 수능 점수가 필요하지 않은 학생들도 수능을 대비하는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는다. 수능 직전에는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등교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 코로나19로 체험학습 허용일수가 늘어난 올해, 미등교 학생 수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한국 사회에서 수능의 영향이 큰 것은 대학 간판이, 학벌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경험한 사회에선 학벌이 취업과 출세의 잣대로 작용한 게 사실이다. 회사에서 만년과장이어도 자녀가 소위 일류대에 들어가면 그를 보는 시선이 바뀐다는 얘기가 요즘도 회자된다. 자녀가 다니는 대학의 이름값이 부모의 체면이라고 여기는 풍토도 남아 있다. 학교를 둘러싼 사회체제는 명문대 중심의 학벌 체제,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 수도권 선호와 집중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학교와 교육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좌절시킨다. 그러나 조금씩 변화의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대학 진학률은 1990년대 중반 보편교육 단계(50%)에 진입하고 한때 80%에 육박했으나 이제 70% 수준이다. 대학을 선택하지 않는 학생이 늘고 실력이 중요하다는 분위기가 커졌다. 학력과 학벌보다 역량 중심으로 채용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학교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체제가 바뀌면 교육도 함께 바뀔 것이다. 그리고 학교 교육은 그러한 사회 변화에 분명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