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망사용료’, 법 영역인가 시장 영역인가…의견 분분
인터넷 기본 원칙 vs CP-ISP 자율계약
넷플릭스 입장 변화 없어…좁혀지지 않는 접점
2021-12-09 조성준 기자
[매일일보 조성준 기자]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 망사용료 지급 논란이 지속되면서 통신망 사용으로 발생하는 비용 책임 소재에 대한 의견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서비스를 이용한 기업이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이번 논란의 중심에는 해당 문제가 법의 영역이냐 시장의 영역이냐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표가 붙는다. 거래 업체 간 자율 조정이 되지 않으면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인 가운데, 콘텐츠제공사업자(CP)와 인터넷제공사업자(ISP) 간의 자율 계약의 건으로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커지고 있다.
망사용료 지급을 주장하는 이들은 트래픽 규모에 합당한 이용대가를 지급하는 것이 인터넷 기본 원칙이라는 입장이다.
9일 SK브로드밴드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자사 망에 발생시키는 트래픽이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18년 5월 50Gbps 수준에서 2021년 9월 기준 1200Gbps 수준으로 약 24배 폭증해 트래픽 용량 증설에 투자하는 비용만큼 손실이 계속 늘고 있다. 넷플릭스에도 이같은 사실을 전하고 협상을 요청해왔으나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고, 2년 전인 2019년 11월 방송통신위원위에 재정을 신청했다.
국회도 전혜숙, 김영식 의원이 망사용료 의무화 취지의 법안을 발의하는 등 제도 마련에 팔을 걷어붙였다. 정치권은 넷플릭스, 유튜브 등 대형 CP의 서비스가 국내 인터넷 트래픽 발생량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인터넷망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이들이 압도적인 시장지배력을 앞세워 정당한 망 이용대가를 거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망 사용료 관련 법안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합리적인 망 사용료 부과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수백억의 망사용료를 납부하고 있는 국내 CP사와의 형평성 문제까지 거론되며 법제화 지지 여론을 더했다.
입법 논의가 본격화된 뒤 이달 초 넷플릭스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이 직접 국회 및 정부부처를 방문하는 소통 행보에 나서기도 했지만 망사용료 미지급 입장은 고수하고 있다. 대신 자체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인 오픈커넥트얼라이언스(OCA)를 이용한 해결책만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넷플릭스는 이 같은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여론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달 초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이 직접 나서 국내 통신사와의 망사용료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힌 데 이어, 지난달 오픈넷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관련 주제를 발표했다.
일단 상황은 넷플릭스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넷플릭스가 지난해 4월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하며 원치않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망 이용대가를 낼 의무가 없음을 법원이 확인해주기를 원한 소송이었지만 도리어 논란만 키웠다. 1심 재판부는 “원고(넷플릭스)는 피고(SK브로드밴드)를 통해 인터넷 망 접속 등 유상의 역무를 제공받는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원고는 피고에 유상의 역무를 제공받는 데 대한 대가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봤다. 패소 판결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패소 이후에도 넷플릭스 입장은 변함이 없다. 넷플릭스 측은 그간 국내 활동에서 “CP의 의무는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일 뿐 전송은 ISP의 몫이며, 망 사용료는 트래픽을 차별 없이 처리해야 한다는 망 중립성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망사용료 지급 여부는 자유계약 사항으로, 시장논리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결국 법원의 2심 판결과 정치권의 규제 법안 윤곽이 나와야 논란이 정리가 될 것으로 관측한다.
업계 관계자는 “(망사용료 지급) 법제화 여부에 따라 IT 기술비용 지급 기준이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향후 결과가 중요한 선례를 만들기 때문에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