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가혹하리만큼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어렵고 팍팍해지고 있다. 소득은 줄어드는데 고삐 풀린 듯 천정부지로 무섭게 치솟는 밥상물가에 얇아진 지갑을 움켜쥔 소비자들의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집세는 오르기만 하고, 대출이자 부담도 늘어난다. 한겨울 추위는 이미 시작되었는데 보일러 난방비마저 들썩인다. 세금을 비롯해 “의·식·주 모두 안 오르는 게 없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주춤하는 경제 성장세 속에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국내 물가의 오름세로 이어질 것이란 어두운 전망까지 나온다. 코로나19 사태로 가뜩이나 생계 대책이 막막한 상황에서 위축된 서민들의 살림은 물가 상승만으로도 직격탄을 맞게 되어 저소득 취약계층에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서민경제의 힘들고 어려운 실상은 최근 나온 몇 가지 통계에서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2월 2일 발표한 ‘2021년 3/4분기 국민소득(잠정)’을 보면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배당 수입이 줄어 명목 국외순수취요소소득(9.5조 원 → 3.2조 원) 규모가 축소되면서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1.4%)을 하회하는 0.1% 증가하였으나,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실질무역손실(-10.9조 원 → -10.9조 원)은 전분기 수준인데, 실질 국외순수취요소소득(8.8조 원 → 4.0조 원)이 줄어들면서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0.3%)을 하회하는 전기 대비 0.7% 감소했다. 국민이 돈을 쓸 여력이 그만큼 줄어들어 실질 구매력이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통계청이 지난 12월 2일 발표한 ‘2021년 11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2021년 11월 가구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 460개 품목의 평균적인 가격 변동에 대하여 2015년도를 100으로 기준하여 측정한 소비자물가지수는 109.41(2015=100)로 전월 대비 0.4% 상승하였고, 전년 동월 대비로는 3.7%나 올라, 전월 3.2%보다 0.5%p 상승했다. 이는 2011년 12월(4.2%) 이후 9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며, 올해 들어서도 최고치다.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낮아져 지갑은 얇아졌는데 물가는 무섭게 치솟은 셈이다.
내용을 파고들면 더욱더 심각하다. 생필품처럼 구매 빈도가 높고 지출 비중이 큰 141개 품목의 물가인 생활물가지수, 즉 서민들의 체감물가인 밥상물가는 5.2%나 치솟았다. 달걀(51.6%), 배(45.2%), 사과(34.6%), 돼지고기(12.4%) 등이 오르며 상승 폭을 이끌었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도 국내 가공식품 가격을 끌어올렸다. 그야말로 장보기가 무섭다. 여기에 전셋값과 월셋값도 각각 2.7%, 1.0% 상승했다. 12월에 들어서면서는 기름보일러용 등유, 연탄 등 서민들의 대표적인 난방용 연료값도 오름세를 보여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대내외적 여건들이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유가나 원자재값과 곡물가격 상승세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 인플레이션 압력 요인이 겹쳐 있다. 실제 통계청과 한국은행 등도 물가 오름세가 지속할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 11월 10일 발표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6%까지 넘어버렸다. 미국뿐만 아니라 현재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가운데 유로존의 11월 소비자물가는 4.9% 상승했다. 유럽과 인접한 터키는 19.9%, 러시아는 7.8% 상승했다. 중국도 13.5% 오르면서 25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 3.2%로 다른 나라에 비하면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처럼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기록적 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경기가 회복되고 소비가 살아나는 국면에서 글로벌 공급망 마비, 주요국의 구인난으로 인한 공급 부족 등이 겹치면서 세계적으로 물가가 치솟고 있다. 특히, ‘애그플레이션(Agflation | 농산물의 Agriculture + Inflation의 합성어로 농산물 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 현상)’과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 | 친환경의 Green + Inflation의 합성어로 친환경 원자재 수급 불균형에 따른 물가 상승 현상)’이 쌍끌이로 국제 물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 게다가 최근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확산하면서 ‘프로틴플레이션(Proteinflation | 단백질의 Protein + Inflation의 합성어로 단백질 공급원인 달걀·가금류 공급이 줄고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식품 물가가 더 급등할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전망되고 있다. 이렇듯 주요 국가들의 최근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은 가운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금융협회(IIE) 등도 세계 주요국의 물가가 더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고, 한국은행도 지난 11월 9일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쉽게 해소되기 어렵고,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한 바 있다.
치솟는 물가는 고소득 부유층보다 저소득 서민층에 더 큰 충격을 준다. 따라서 정부는 서민생계를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물가 안정에 무엇보다도 정책의 최우선순위를 둬야만 한다. 면밀하고 세심한 시장 점검과 관련 품목의 선제적 수급 대책을 강구하고, 치솟는 밥상물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만 한다. 고물가의 방치는 각종 부작용을 낳게 하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까지 부추긴다. 안이한 판단을 경계하고, 실기하지 않도록 물가 상승세를 잡는 데 정부의 모든 정책 수단을 모색하고 국가의 역량을 총 집주(集注)해야 한다. 소비자단체와 연계한 물가 감시를 강화하고, 식재료비 부담 완화를 위한 지원 확대 등을 주도면밀하게 추진해야 한다. 정치의 본질은 국민의 어렵고 쓰라린 부분을 치유하고 돌보는 데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통찰하여 물가를 잡는 실효성 있는 대안들을 조속히 강구하고, 국민의 삶을 살피는 데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現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