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갈 길 먼 韓 전기차 전환, 현대車는 글로벌 5위
韓 전기차 판매 세계 7위…현대차그룹 글로벌 5위로 ‘일당백’
외국계3사, 전기차 전환 난항…한국, 노조리스크 등 매력도 떨어져
미래차로 수익내는 차업체 20%에 불과…“정부 지원 지속 필요”
2021-12-16 김명현 기자
[매일일보 김명현 기자] 한국의 전기차 전환이 ‘갈 곳을 잃은’ 모양새다. 국내 주요 완성차의 ‘일당백’이 국가 판매량 순위를 떠받치고 있는 구조다. 특히 국내 내연기관 업체들의 사업전환이 난항을 겪고 있어 정부의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16일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올 3분기 연간 누적 전기차 판매량은 7만1006대로 전년 동기(3만6268대) 대비 9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가별 순위로는 한국이 7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순위는 국내 1위이자 세계 판매 4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의 선전 덕분이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순위에서 현대차그룹이 5위에 오르며 전체 판매량을 견인한 것이다. 1~4위는 테슬라, 상하이자동차, 폭스바겐, BYD 순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이와 관련, “(현대차그룹이) 기존 모델인 코나·니로 외에 지난해 포터2 EV, 봉고EV를 출시한 데 이어 올해도 전용 전기차 새 모델을 선보이며 전기차 판매량 증대에 노력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올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탑재한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 제네시스 GV60를 잇따라 출시하는 등 전기차 전환에 힘을 쏟았다. 현대차 역시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여파로 생산차질이 불가피했지만, 반도체 대체소자 발굴과 공급업체 다변화 등을 추진하며 피해 최소화에 주력했다.
국내 1등 업체의 전기차 전환 가속화에도 업계에선 한국 자동차산업 생태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한국에 자동차 제조사가 현대차만 있는 게 아닐 뿐더러, 완성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국내 부품업계의 전기차 전환 현황이 암울할 정도라는 진단이다.
우선 현대차·기아 외 국내 중견 3사(르노삼성·한국지엠·쌍용차)는 전기차 등 친환경차로의 체질개선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입지가 축소되고 있다.
문제는 외국계인 르노삼성과 한국지엠이 본사로부터 국내 전기차 생산물량을 배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다수의 자동차 전문가들은 국내 노동생산성 저하와 강성 노조에 따른 파업리스크, 경직된 노동시장 등으로 한국이 매력적인 전기차 생산기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르노삼성은 르노 조에(ZOE)를 수입해 판매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고, 한국지엠도 최근 2025년까지 신형 전기차 10종을 국내 출시한단 계획을 밝혔지만, 이는 전 차종 수입으로 진행된다고 못 박았다.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이던 쉐보레 첫 전기SUV 볼트EUV와 볼트EV 부분변경 모델의 경우 배터리 리콜 사태로 해를 넘기게 됐다. 쌍용차 역시 첫 전기차 ‘코란도 e-모션’을 올해 국내 시장에 선보이려고 했지만, 반도체 부족으로 연내 출시가 불투명한 상태다.
국내 미래차 전환 실태조사 결과는 사안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동차산업연합회(KAIA)의 ‘자동차업계 경영 및 미래차 전환 실태조사’를 보면, 국내 완성차·부품사 300곳 중 미래차 분야에서 수익이 나는 업체는 20%에 불과했다. 미래차 분야에 진출조차 못한 업체는 절반이 넘는 57%였다. 미래차 투자 애로사항은 자금 부족(47%), 인력 부족(32%) 항목이 전체의 80%를 점유했다.
장석인 산업기술대 석좌교수는 “적지 않은 업체들이 여전히 기존 내연기관 산업 생태계 내 위기에 직면해 있고, 미래로의 구조 전환을 위한 혁신은 여건 미비와 높은 전환비용 등으로 느린 속도로 이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미래차 생태계 조기 구축을 위해 자동차산업 관련 기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정부의 선제적 사업구조 개편 및 전환사업 홍보, 기업 참여 독려 등이 동시에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만기 KAIA 회장 역시 “효과적인 미래차 전환을 위해선 하이브리드차 등이 일정 기간 캐시카우 역할을 하도록 정부 지원을 지속하는 한편, 노동력 축소나 생산유연성 확보에 대응하기 위해 법률 등 사회 제도를 기술변화에 맞춰 개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