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때문에 죽을뻔 했네"

'5.18수괴' 정동년씨의 특별한 인연

2009-08-20     뉴시스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 더 오래 사셨으면 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5.18광주사태’의 수괴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았던 정동년 전 광주남구청장(66)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정 전 구청장은 "김 전 대통령같은 위대한 정치지도자가 후세에 다시 나오지 않을 것 같다"면서 5.18 광주민중을 전후해 김 전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을 회고했다. 김 전 대통령과 정 전 구청장을 하나로 만든 막후에는 신군부가 있었다. 당시 전남대 복학생 대표였던 정 전 구청장과 김 전 대통령은 1980년 5월18을 전후에 신군부에 의해 끌려가 이른바 ‘5.18배후’ 세력으로 꾸며진다. 그는 "1980년 5월18일 새벽 보안사로 끌려가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500만원을 받은 사실과 사용처를 추궁받았다"면서 "1주일째 계속된 고문에 500만원을 받아 이미 고인이 된 박관현 전 전남대총학생회장과 5.18의 마지막 수배자로 잘 알려진 윤한봉씨에게 200만원을 전달했다고 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거짓 진술을 한 그는 문제의 심각성과 죄책감 때문에 상무대영창에서 숟가락으로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실은 1980년 4월 전남대 복학생 대표 자격으로 정 전 구청장은 DJ의 강의 초청을 위해 동교동을 방문했다가 당시 비서관이었던 김옥두 전 국회의원이 "시간을 두고 추후 일정을 잡자"는 말에 DJ를 먼발치에서만 보고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나왔으나 이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5.18의 배후에는 대학생들이 있고, 대학생들의 뒤에는 복학생, 복학생 뒤에는 DJ가 있다는 허무맹랑한 조작을 통한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음모가 김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수괴, 정 전 구청장은 내란수괴 등의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하지만 정작 김 전 대통령과 정 전 구청장의 첫 대면은 감형과 사면을 받고 김 전 대통령이 미국 망명길에서 귀국한 1985년 동교동 집에서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아이고, 자네 때문에 죽 을뻔 했네, 내가 준 500만원 돌려 주시요"라고 하자 정 전 구청장은 "돈을 받지 않았는데 돈 좀 주세요"라고 우스갯소리를 나눴다고 한다. 이같은 인연으로 정 전 구청장은 재야활동을 하면서 DJ와 광주 재야인사의 가교역할을 했다. 정 전 구청장은 "1987년 대선에서 야당후보 단일화 실패로 코가 빠져있는 DJ를 살리기 위해 학생들과 재야인사들을 설득시켜 1988년 10만명의 군중을 광주역에 모이게 하고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면서 "그때 되살아난 DJ는 그해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만들게 되면서 정치적으로 부활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청와대 입성하기 전까지 광주 재야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큰 소리도 치고 협조도 요청하는 등 당시 상황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면서 "보수정치인이라고 봤던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후 대북관계나 대미외교 등을 펼치는 것을 보면서 역사적 인식이 같다는 것을 알았고 위대한 정치 지도자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한때 생사를 같이했던 특별한 인연때문인지 정 전 구청장은 "고인의 명복을 빈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