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재영 기자]‘골 때리는 그녀들’이란 예능 프로그램의 편집 조작이 논란이다. 필자도 즐겨 보던 프로그램이라 이번 논란이 안타깝다. 여성 연예인들이 프로 축구처럼 진지하게 풋살 경기를 하는 게 방송의 주된 내용이다. 최근 방송편에서 제작진이 경기의 박진감을 높이기 위해 스코어의 시간순서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네티즌들이 먼저 관련 의혹을 제기했고 제작진이 인정하며 사과했다.
스코어 결과를 바꾼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경기 승패가 바뀌진 않았다. 하지만 방송의 시간흐름에 따라 시청자가 보고 느꼈던 감정은 훼손됐다. 시청자들은 어설픈 실점장면에서도 실망했지만 경기에서 지고 있던 팀의 골키퍼가 초반 실점부터 눈물을 흘리던 장면에 의아해 했다. 이에 골키퍼를 비난하는 몇몇 악성댓글도 보였다. 제작진이 의도한 결과는 아니겠으나 ‘악마의 편집’처럼 돼 버렸다. 제작진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예능 면의 재미를 살리려 했으나 시청자가 용인할 수 있는 편집 수준인지에 대한 판단이 미숙했다.
“축구가 너무 재밌다”고 말하는 출연자들에게 흥미를 느꼈던 시청자들은 그러한 순수한 열정이 경기 과정에서 표출되는 장면에 몰입했다. 하지만 그게 페이크 다큐였다는 사실에 시청자들은 배신감을 느끼게 됐다.
방송의 시청률이 오르고 인기를 얻어야 제작진과 출연진도 더 좋은 방송을 이어갈 동력이 생기겠지만 게임에는 지켜야할 최소한의 룰이 있다. 그것이 방송을 위한 선의였는지, 욕심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룰을 어기면 게임은 성사되지 않는다. 그 순간부터 게임 본연의 목적과 재미도 잃게 된다.
최근 주식시장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이 떠오른다. 기업이 더 높은 수익성, 지속가능성을 얻고자 때론 경영진이 룰에서 벗어난 결정을 한다. 이를 두고 경영상 필요한 판단이었는지, 배임인지 사법 판결의 줄타기가 벌어진다. 대게는 특정 이익집단을 위한 결정이었던 정황이 드러나 유죄 판결에 이르렀다.
꼭 사법부를 넘나들지 않더라도 주주를 실망하게 만든 사례도 많다. 최근에는 잇따른 물적분할 사례가 소액주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대규모 기업집단은 지분 승계 또는 상속 과정에서 지배기업에 대한 주식 변동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그 지배구조 개편의 종극에는 소액주주 지분이 희석되거나 주가 하방압력에 시달리는 사례가 많다. 이밖에도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공매도, 양도세가 투자 매력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과 반대 견해가 충돌하고 있다. 이들 모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만드는 원인들이다.
최근 소위 ‘동학개미’를 벗어나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동학개미는 국내 유동성이 선순환하는 효과가 있었으나 서학개미는 그 반대의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손실이 날 경우 개인 투자자의 재산뿐만 아니라 국부 유출이 따른다. 이득이 날 경우 외화를 벌어들일 수도 있겠지만 해외투자로 지나치게 쏠리면 국내시장이 소외되는 역작용은 피할 길이 없다.
국내 시장이 박스권을 반복할 때 해외 증시가 폭등한 여파도 크겠지만 동학개미가 등 돌리게 만든 여러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들에 대해서도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앞선 방송 프로그램 조작 사례처럼 주주에게 실망을 주는 일이 반복되면 자연히 시장의 인기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망한 시청자들에게서 방송 폐지론이 나오는 것처럼 기업과 시장의 지속가능성도 흔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