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고차시장 개방 논의를 지켜보며
[매일일보 김명현 기자] 약 3년간 결론을 못 낸 중고차시장 개방 논의가 조만간 마침표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지난해 12월 30일 ‘생계형적합업종 심의위원회 개최’를 공식 요청했기 때문이다. 지지부진한 논의에 지쳐 최근 중고차시장 진출을 선언했던 완성차업계는 중기부의 뒤늦은 결정에 즉각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완성차업계와 소비자단체들이 바랬던 심의위 개최 소식은 중고차 거래에 신뢰를 잃었던 경험이 있는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도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다만 시장 개방 논의를 둘러싼 일련의 진행 과정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이미 중고차매매업은 2019년 2월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기한이 만료됐고, 같은 달 중고차매매업계의 생계형적합업종 지정 신청에 대해 동반성장위는 ‘부적합’ 판단을 내렸다. 남은 절차는 중기부가 관련 심의위를 열어 최종 결론을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기부가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 회의를 미루고, 개방 여부에 대한 법정 결정 시한(2020년 5월)을 훌쩍 넘기는 동안 소비자 피해는 누적됐으며 피해 구제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19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신고된 상담 건수 중 중고차 중개·매매 관련은 1만8002건에 달했지만 피해 구제는 2%대에 머물렀다.
그간 완성차업계는 법에 저촉되지는 않으나 중기부 심의위 개최에 따른 ‘결론’을 기다리느라 중고차 시장 진출을 자제해왔다. 기업들이 소비자 후생이란 큰 명분을 안고도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중기부의 노력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중기부는 심의시한을 넘기면서까지 중고차매매업계와 완성차업계 간 ‘상생안’ 도출에 매진했다. 2021년 끝자락까지 말이다. 그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나서 양측의 대화채널 가동을 위해 애쓰기도 했다.
관련 취재 중엔 중기부의 무력감 혹은 진퇴양란에 놓인 상황을 엿보며 씁쓸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일각에선 애초에 중소기업의 이익을 도모하는 중기부가 대기업인 완성차 업체들에 유리한 결론을 허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중고차매매업계의 표를 의식한 판단에 따라 이 문제가 대선까지 질질 끌릴 것이란 관측 역시 적지 않았다. 이는 곧 국토교통부의 ‘타다 사태’를 떠올리게 했다.
특히 상생안 도출을 위한 회의 과정을 지켜봤던 몇몇은 중고차매매업계가 합의안 도출 의지가 없다고 진단했다. 이 사안에 얽힌 이해관계자들이 쏟은 수많은 시간들은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움직임이었는지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생계형적합업종 심의위원회는 전문가들로 구성돼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이 기대되는 곳이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의 말처럼 심의위가 법에서 부여한 권한을 정당하게 행사해줄 것을 촉구하는 바다.
무엇보다 국가 발전을 위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들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소비자 후생을 위하는 기업 행보가 정치 논리로 인해 지체되고 죄악시되는 일이 없도록 지혜를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