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앞둔 의령군 한 공무원의 마지막 편지 "감동"
김시범 국장, 군청 내부게시판에 작별 인사 남겨
2023-01-06 문철주 기자
[매일일보 문철주 기자] 김시범 의령군 경제문화국장이 퇴직을 앞두고 의령군 모든 공직자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30일 의령군청 공무원 내부게시판에 김시범 국장은 '공로연수에 들어가면서'라는 편지글을 올렸다. 김 국장은 40년 넘는 공직생활의 소회를 50페이지 분량의 글과 사진으로 구성해 남겼다. 이 편지에는 의령군 주요 역사적 고비마다 현장에서 고군분투했던 한 공무원의 삶을 진솔하게 표현해 후배 공무원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김 국장은 81년 무더웠던 여름날 대학 진학의 꿈을 뒤로 하고 호구지책으로 시작했던 공직이 평생 직업이 됐다고 했다. 마음을 그대로인데 어느새 머리는 반백(半白)이 되어 이제 공로(功勞)연수에 들어가지만, 말이 좋아 공로 연수이지 '사실은 아무 일도 해 놓은 것이 없이 헛되어 늙었다'라는 '공로(空老)'가 된 처지라고 고백했다.
80년대 주요 사무용품인 주판을 배우기 위해 상고 출신 방위병에게 주산을 배운 일, 사무실 등사기 롤러 잉크 정리와 숙직 시 연탄불 갈기의 막내 임무, 당직 순찰시계를 차고 다니며 두 시간 간격으로 마을 순찰하기, 우천 시에 투명 유리병에 고인 빗물 눈금으로 강우량 확인해 각 읍면에 전통(傳通)으로 보고 하기, 봉급날 노란 월급봉투에 십 원짜리 동전까지 넣은 7만 원의 봉급을 점퍼 안주머니에 넣고 퇴근하는 기분 묘사 등 '흑백사진'과 같은 지난 사건들을 재밌게 소개했다.
한편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도 김 국장은 있었다.
82년 4월, 일명 '우순경사건'이라 불리는 궁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대통령이 현장에 방문했고, 사고수습에 의령군 모든 공무원이 나설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했다. 김 국장은 “80년대 궁류면에는 담배 농사를 많이 지었는데, 한동안 사고가 난 궁류면 운계, 평촌마을로 출장을 가면 논에서 울며 담뱃잎을 따고 있는 유족분들이 많아 마음이 저렸다”라고 씁쓸한 지난 기억을 회상했다.
03년 9월, 태풍 매미가 경남 지역을 휩쓸었다. 의령에도 교량·제방 붕괴, 산사태, 농경지·가축 유실, 인명 피해 등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어느 날 서암저수지가 위험하다는 연락을 받고 주민 대피를 위해 현장으로 긴급 출동을 가는 중 갑자기 물이 불어나 차가 붕 떠버리는 아찔한 사고를 겪었다고 했다. 간신히 물 밖으로 나와 목숨을 부지했지만 연이어 산사태가 발생하고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다고 김 국장은 몸서리를 쳤다.
이 밖에도 지난 40년 공직생활의 희로애락을 탁월하게 그려내며 의령군과 후배들에 대한 애정을 맘껏 표출했다.
김 국장은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니 이렇다 할 발자취가 없어 그저 아쉽고 송구한 마음이 크다"라며 "큰 허물 없이 여기까지 온 것 모두 직원 여러분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그러면서 "나의 고향 의령과 나의 후배 공무원들은 저의 자랑이다"라며 "나는 이제 마침표를 찍지만, 여러분들은 의령군을 더욱 새롭게 만드는 느낌표를 찍어달라"고 당부했다.
후배 공무원들은 댓글로 "한편의 인생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40년의 역사가 여기에 있다", "님과 같이 걸었던 길도, 같이 걷지 않았던 길도 모두 추억이 되었습니다", "따뜻한 봄날 농막에 앉아 막걸리 한잔하며 뵙고 싶습니다” 등과 같은 훈훈한 반응으로 퇴직을 앞둔 한 선배 공무원을 배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