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K-투자은행 성공 열쇠
이베스트투자증권 전배승 애널리스트
미래에셋대우는 증권업계 최초로 자기자본 9조원을 넘어섰다.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도 5조원대로 덩치를 불려 초대형 증권사로 성장했다. 100조원대 자기자본을 가진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에 비하면 여전히 격차가 크지만, 우리 증권업계도 한국형 초대형 IB를 바탕으로 외형을 꾸준히 키우고 있다.
해외 IB 수익구조는 금융위기 이후 크게 바뀌었다. 자기자본이익률(ROE)로 보여주는 수익성은 낮아진 반면 안정성과 지속성은 높아졌다.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금융시장에서도 과거처럼 금융상품 중개(brokerage)나 거래(trading)만으로는 수익이 많이 안 난다. 대신 변동성이 낮고 반복적이고, 지속성이 높은 이자이익, 보수(fee)수익, 투자(investing)수익이 늘어나고 있다. 안정성과 지속성이 나아진 이유다. 실제로 해외 주요 IB가 내놓고 있는 실적도 큰 부침 없이 꾸준하다.
요즘 해외 IB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성을 기록하고 있는 곳은 호주 맥쿼리다. ROE가 15%에 달한다. 주가순자산배율(PBR) 또한 2.0배를 웃돌아 해외 IB 가운데 가장 높은 주가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다. 맥쿼리가 내세우고 있는 수익모델은 연금형태(annuity-style) 사업이다. 연금처럼 해마다 고정적이고 지속적인 이자와 보수를 꾀한다. 좋아진 수익성을 바탕으로 대체투자 영역인 부동산과 인프라 시장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 증권사도 많이 좋아졌다. 해외 IB가 걷는 길로 방향을 틀어 체질을 바꾸어왔다. 금융상품 거래에 의존하는 수익 비중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국내 증권사 매출 가운데 위탁매매(브로커리지)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상반기 30%를 밑돌았다. 2009년만 해도 브로커리지 수익이 전체에서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10년 전 10% 안팎에 불과했던 IB 부문 수익 비중은 이제 30%를 넘어서고 있다.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분류하는 이자이익 규모도 꾸준히 불어났다. 전반적으로 수익구조는 다양화하고, 안정성은 높아졌다.
숙제도 남아 있다. 더 나은 IB 모델을 갖추어야 한다. 브로커리지 비중이 줄어든 반면 운용이익 규모는 커졌다. 금융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크게 출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고성장해온 IB 부문도 부동산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 얼마 전부터는 국내외 부동산 투자위험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있고, 그만큼 새로운 수익기회도 줄어들 걸로 보인다. 이자이익 규모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해외 IB와 같이 오랫동안 쌓아온 대출채권에서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이자수익은 아니다. 보유채권이나 신용공여로 생기는 변동성이 큰 이자수익이라는 단점이 있다. 우리 증권업계도 변화를 끊임없이 꾀해왔지만, 해외 IB에 비하면 이익 안정성과 지속성이 여전히 낮다.
가까운 일본 노무라증권을 눈여겨보자. 얼마 전 수익성 제고에 나서 자산관리에 생애단계별(Life-Stage) 수익모델을 설정했다. 청장년층 손님을 새로 잡으려고 온라인 증권사인 라인증권도 세웠다. 저성장과 노령화라는 공통 변수 아래에서 디지털 채널은 금융시장에서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 증권사 역시 지속적으로 사업구조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외형 확대와 수익구조 개선을 병행하는 한국형 IB 모델을 성공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