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견된 실패’ 조선 빅딜 무산에 조선업 경쟁력 ‘빨간불’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매각 EU 기업결합 금지에 인수 포기 빅2 체제 발목...자국 조선사 간 경쟁구도 약화와 투자 효율성 강화 기회 놓쳐 대조해, 자금난 막막…비조선업 새 주인 다시 찾는 부담도

2023-01-18     김아라 기자
대우조선해양이
[매일일보 김아라 기자] 국내 조선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던 ‘역대급 조선사 빅딜’이 3년 만에 무산됐다. 기업결합 심사를 미루며 시간을 끌던 유럽연합(EU)이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의 독과점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을 결국 반대하면서다. 이에 기존 빅3에서 빅2 체제로의 개편을 통해 과당경쟁을 해소해 한국 조선업 경쟁력을 한 차원 더 끌어올리겠다는 국가 차원의 구상이나, 현대중공업의 중장기 사업계획은 물론 대우조선해양의 재무구조 개선 작업까지 원점에서 다시 설계해야하는 처지가 됐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4일 현대중공업그룹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이 대우조선과의 기업결합 신고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EU의 기업결합 금지 결정이 나온 지 하루 만이다. 이는 EU가 지난 13일(현지 시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 독점을 이유로 두 기업의 인수합병(M&A)을 불허한 영향이 크다. 앞서 현대중공업은 2019년 산업은행로부터 대우조선해양 주식 55.7%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EU를 포함한 6개국으로부터의 기업결합 심사를 완료하는 것이 인수의 선결 조건이었다. 이에 현대중공업은 2019년 6개국 경쟁당국에 기업결합을 신청해 중국, 싱가포르, 카자흐스탄의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EU·일본의 승인이 계속 미뤄졌다. EU는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세 차례나 중지했다가 지난해 11월 심사를 재개했다. 두 달 전만 해도 EU의 심사 재개로 인수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흘러갔다. EU는 두 기업이 합병하면 LNG선 시장 점유율이 60%에 달하기 때문에 시장 우위를 앞세워 뱃값을 올리면 머스크·CMA CGM과 같은 유럽 해운사들이 피해를 입을 것으로 우려했다. 또한 최근 에너지 대란으로 유럽의 LNG 가격이 치솟는 상황에서 LNG선 선가까지 오르면 유럽 내 LNG 소비자 가격이 더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단 점도 우려했다. EU의 불허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강하게 반발하며 소송에 나설 기류도 감지됐다. 그러나 하루 만에 인수를 포기했다. EU를 상대로 시정요구를 한다 해도 결론 나기까지 또다시 1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이 무산되면서 조선업 경쟁력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금까지는 조선사들의 수주 선종과 기술력 수준이 비슷해 조선 3사가 과다 경쟁을 펼쳐 수익성이 악화되고, 이 부담이 협력사에 전가돼 국내 조선업 생태계가 활성화되기 힘든 구조였다. 또한 현재 전 세계 조선시장은 자국 업체 간 합종연횡으로 규모를 키우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때문에 정부는 대형 3사 체제에서 빅2 체제로 전환해 경쟁력을 키우고 저가 수주를 막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수합병 무산으로 정부와 산업은행이 추진하던 조선 산업 재편과 경쟁력 제고 방안도 원점으로 회귀하게 됐다. 무엇보다 대우조선해양은 당장의 자립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생존자금 수혈을 받지 못하면서 재무구조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3분기 말 연결기준 부채비율은 297%에 달하는데, 부채 분류 시 692%로 3배 가까이 상승한다. 여기에 전환사채까지 포함하면 4085%까지 치솟는다. 또한 지난해에만 약 1조3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고 올해도 적자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불행 중 다행 지난해 조선업 호황에 힘입어 연간 수주량과 수주액 목표치를 140%, 40% 초과 달성했지만, 수주 후 실제 매출에 반영되기까지는 통상 3년 정도 소요되므로 재무건전성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인수할 주인을 다시 물색하지만, 이 또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EU가 독점을 이유로 합병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삼성중공업과의 합병도 불가능하다. 아예 비조선업을 물색해야 한다. 이에 현재 한화그룹·포스코그룹·GS그룹·효성그룹·SM그룹 등이 잠재 후보로 언급되고는 있으나, 조선업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와 대우조선해양의 악화돼 있는 재무구조가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해외 매각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도 않는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 조선업의 중심에 서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핵심 선박기술 유출 가능성을 가장 큰 족쇄로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