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인 칼럼] 위문도 필요하지만 아량도 필요하다
2023-01-20 매일일보
혹한기 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해본 대한민국 남자들은 다 안다. 드넓은 연병장이며 막사 주변의 쌓인 눈을 치우는 제설작업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것인지를. 물론 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해보지 못한 필자는 그것이 얼마나 성가시고 힘든 고역인지 가늠조차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젊은 시절 친구가 전방에서 군 생활을 하다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려 하면 '아! 그놈의 지긋지긋한 제설작업…' 하며 하소연하던 기억이 난다.
최근 한 여고생이 쓴 위문편지가 전방에서 고생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감사하며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조롱 섞인 내용을 담아 논란이 되고 있다.
한겨울 눈 치우던 이야기는 전방에서 군대 생활 했던 사람만이 공감하는 고생담인데 서울의 한 고등학교 여학생이 "군 생활이 힘드냐, 그래도 열심히 살아라 추운데 눈 오면 열심히 치우고...이 정도는 이겨줘야 사나이 아닐까요"라고 조롱의 뜻이 담긴 위문편지를 보냈고 이것이 인터넷에 퍼지고 기사화가 되었다.
기사에 실린 사진을 보면 제대로 된 편지지도 아니고 공책을 아무렇게나 찢어 쓴 것이어서 정말 성의가 없음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자매결연을 맺은 군부대 장병들에게 2시간동안 위문편지를 쓰면 1시간 봉사활동을 한 것으로 쳐 준다는 학교 측의 강제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급기야 ‘휴대폰 병영에 위문편지가 웬 말이냐’ ‘여고생 위문편지를 금지하자’는 청원까지 쏟아졌다.
이번일로 필자도 위문편지가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 알았다. 이런 관습은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비롯됐다. 광복 후 일시 중단됐다가 1949년 되살아나고 한국전쟁 중엔 최전방 참호까지 편지가 배달되었다고 한다.
그런 다른 나라는 어떨까? 다른 나라에도 군인들에게 위문편지를 보내는 문화가 있다. 미국과 인도 등에서 매년 초·중·고생들이 편지를 써서 보낸다. 주한미군들은 한미 양국에서 편지를 받는다. 크리스마스 땐 각양각색의 그림편지까지 쏟아진다. 초등생이나 유치원생들의 천진난만한 문구에는 다들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일부 온라인에선 남녀 대결 양상으로 변질됐다. 모두 감정이 격해진 것 같다. 이런 태도는 바르지 않고 이성적이지 않다. 한두 명의 일탈 때문에 모두를 문제 삼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이번 일을 알린 병사 역시 ‘다들 예쁜 편지지의 좋은 말을 받았는데 (동료) 혼자 저런 편지 받아서 속상했을 뿐’이라고 했다. 많이 약 오르고 속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철부지 학생의 실수 정도로 이해하고 지나가자. 위문도 필요하지만 때론 아량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