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쪼개기 상장’에 빠진 재계…주주 가치는 ‘헌신짝’
유망사업 클 만하면 떼어내는 악습 이어져
작년 기업분할 94% ‘물적분할’…개미들 ‘분통’
2023-01-20 조성준 기자
[매일일보 조성준 기자] 재계가 관행처럼 해온 이른바 ‘쪼개기 상장’(분할 후 신규 상장)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소액 주주들을 외면한 채 자사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비판과 함께 말로만 ‘ESG경영’을 외친다는 따가운 눈총도 받고 있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국내 기업들의 물적분할 후 유가증권시장 상징 혹은 기존 자회사 상장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재계 3위인 SK그룹이 대표적이다. SK는 작년 10월 SK이노베이션에서 배터리 부문을 물적분할해 ‘SK온’을 출범시켰다. SK종합화학은 친환경 플라스틱 중심 포트폴리오를 떼어 내 ‘SK지오센트릭’으로 물적분할했다. SK텔레콤도 비통신 신사업과 투자 부문을 분할해 ‘SK스퀘어’로 출범시켰다. 분할 된 자회사들은 연내 상장이 유력했으나 소액주주들의 물적분할 후 상장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숨죽이고 시점을 고르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LG화학에서 분리한 ‘LG에너지솔루션’은 물적분할 비판 여론을 촉발시켰다. 지난 18~19일 이틀간 높은 관심 속에 일반주식 청약공모를 마친 LG에너지솔루션의 미래는 밝지만 LG화학 기존 주주가 받을 수 있는 LG에너지솔루션 주식은 없다.
이밖에 포스코, CJ ENM 등이 물적분할을 했거나 시점을 조율하고 있다. 통상 여론을 의식해 물적분할 후 상장 계획을 바로 밝히지는 않지만 분리된 자회사의 상장은 기정사실이 돼 있다.
IT공룡 카카오는 회사가 클 만하면 떼어내 따로 상장하기를 반복하다 최근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다. 카카오는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모빌리티 등 자회사들을 상장했거나 상장 추진 중인 상황이다. 주식 상장제도를 이용해 ‘몸집불리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분할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 기업 구조조정 활성화를 위한 정책수단으로 도입됐다. 본 취지는 수익성이 낮은 사업부문을 떼어 내고, 핵심사업에 집중투자를 유도한다는 취지였다. 취지도 악용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이 물적분할을 택하는 점은 더 큰 문제다. 물적분할은 기존 ‘회사’가 신설회사의 주식을 100% 소유하는 반면, 기존 주주들은 신설회사 주식을 전혀 받지 못한다. 만약 신설회사에 투자하고 싶으면 개인 자금으로 다시 투자해야 하며, 기존 모기업이 분할 이후 가치가 하락하면 주가하락으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앉게 된다. 믿고 투자한 기업에게 배신당했다는 배신감에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 기업분할 공시 중 약 94%가 물적분할이었다”면서 “겉으로는 ESG경영을 외치지만 주주들과 함께 성장한다는 마인드가 여전히 부족한 풍토”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