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하도급 관행에 반복되는 참사…“감독·처벌 강화 시급”
이윤추구를 위한 원청→하청→재하청 구조 업계 만연
축소된 공사비·불안정한 근로 계약…부실시공 주요 원인
“업계 전반에 법령이 준수 될 때까지 철저한 감독 필요”
2022-02-09 나광국 기자
[매일일보 나광국 기자]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부실시공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불법 하도급’은 업계의 고질적인 관행이다. 하도급을 주는 업체의 경우 공사 부담은 줄고, 소규모 건설업체도 손쉽게 일감을 따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하도급을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는 영세 업체들이 난립하면서 부실시공의 원인이 됐다. 이처럼 불법 재하도급은 지속적으로 문제로 지적돼 왔지만 여전히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업계에선 강력한 감독과 처벌이 시금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광주 HDC현대산업개발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를 수사하는 경찰이 불법 재하도급 의혹 등 계약 비리에 대한 수사에도 착수했다. 콘크리트 타설은 철근 콘크리트 공사를 하도급 받은 A사가 직접 해야 했지만, 펌프카 장비 업체 B사 소속 외국인 작업자들이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경찰은 불법 재하도급으로 A사 대표를 별도로 입건했다.
부실시공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히며 재하도급 행태는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지만, 건설업계에서는 이러한 행태가 관행처럼 이뤄져 왔다. 지난해 6월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참사와 관련해서도 불법 하도급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시공사인 HDC현산이 건축물 철거 작업을 위해 서울 소재 한솔기업에 하청을 줬고, 이후 한솔과 다원이앤씨가 공사비를 7대3으로 나누는 이면계약을 맺은 뒤 백솔건설에게 다시 불법 재하청을 줬다.
당시 해달 재개발 현장의 철거 공사비는 최초 50억원에서 불법 하도급으로 11억원으로, 다시 9억원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 2020년 9월 전남 순천에 개통됐던 ‘동천 출렁다리’도 순천시에서 공사를 따낸 A사가 B사에게 B사가 C사에게, C사는 D사에게 ‘재재 하도급’을 맡겼고 개통 전 다리 바닥에 구멍이 뚫린 철판이 발견되면서 불법 재하도급 사실이 드러났다.
2018년 9월엔 서울 동작구 상도유치원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더니 벽과 기둥 일부가 무너져 내린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낮에 유치원생 117명이 수업을 받던 곳으로 대형 참사가 날 뻔했다. 사고는 인근 다세대주택 공사 현장의 관리 부실이었고, 당시에도 재하도급이 원이이었다.
이 같은 불법 하도급 사례는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최근 6년간 불법하도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최근 6년간 954건의 불법 하도급이 적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수면 위로 드러나기 어려운 불법 하도급 특성상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위법적 사례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선 영세한 건설업체들이 1~2개 공종별 면허만 갖고 있어 일감을 받아도 결국 재하도급 없이는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 근본적 문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기에 재하도급 과정에서 축소된 공사비뿐 아니라 불안정한 근로 계약도 부실시공 위험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안전이나 공법에 대한 충분한 사전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재하도급도 현행 법령은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 재하도급이 발생하는 이유는 주로 이윤추구에 의한 것이다”며 “정부는 건설 사업 참여 주체의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하는 방향으로 안전관리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해야 하고, 법령준수가 사회에 정착될 때까지 감독과 처벌 또한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