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정희의 금지곡 사태가 데자뷔 되는 이유는
2022-02-13 한운식 칼럼니스트
[매일일보] ‘사노라면 언젠가는 / 밝은 날도 오겠지 / 흐린 날도 날이 새면 / 해가 뜨지 않더냐 /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 내일은 해가 뜬다 / 내일은 해가 뜬다 / 내일은 해가 뜬다 / 내일은 해가 뜬다’
7080세대와 MZ세대가 모처럼 함께 부를 수 있는 그룹 ‘들국화’의 ‘사노라면’이다. 7080세대가 목소리 높여 ‘라떼는 말야’를 외치지 않아도 MZ세대는 그에 공감한다. 그게 노래의 힘이다.
그런데, 이 노래가 한 때 금지곡 이었다는 사실은 아는지. 박정희 군사 정권은 “내일은 해가 뜬다고 하면 지금(군사정권)은 어둡다는 뜻이 되느냐"는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엉뚱한 결정을 한 것이다. 그 시절에는 금지곡이 참 많았단다. 이유도 가지가지다.
‘물 좀 주소 / 물 좀 주소 / 목 말라요/ 물 좀 주소’로 시작되는 ‘물 좀 주소’는 물고문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장막을 거둬라 / 너의 좁은 눈으로 / 이 세상을 떠보자’로 시작하는 ‘행복의 나라로’는 유토피아를 노래했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그 뿐이랴. 송창식의 '왜 불러'는 반말을 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이장희의 '그건 너'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이유에서, 조영남의 '불 꺼진 창'은 창에 불이 꺼졌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이 정도는 그래도 이해가 된다. 군사 정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공고화하려는 것이니. 이금희의 '키다리 미스터 킴'도 금지곡이 됐는데 그 이유가 뭘까. 단신인 박정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아랫사람들의 충정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한 마디로 웃프다.
그로부터 세월이 반세기 가까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 같은 땅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모 공중파 라디오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한 PD가 집권여당의 ‘강력한’ 항의로 방송에서 하차하게 됐다.
PD에 따르면 최근 방송에서 가수 'DJ DOC’의 ‘나 이런 사람이야’를 선곡했다. 그는 “나에게는 관대하고 / 남에게는 막 대하고 / 이 카드로 저 카드 막고”라는 가사를 언급하며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막 대하는’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뽑아선 안 되겠다. 누구라고 이름을 말하면 안 되지만 청취자 여러분 각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정당으로부터 “대통령 후보를 겨냥해 공정하지 못한 방송을 했다”는 항의가 들어왔다는 게 PD의 설명이다. 그 정당 대통령 후보 부인의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 비판이 일파만파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였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있다. 법인카드 유용 논란에 뜨끔해서 군사정권의 금지곡 사태가 떠오를 만큼 어처구니없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루 아침에 방송에서 잘린 PD에 이렇게 전한다.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 내일은 해가 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