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지난 1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3.6% 오르며 4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3.2%) 9년 8개월 만에 3%대로 올라선 뒤 11월(3.8%), 12월(3.7%)에 이어 올해 1월(3.6%)까지 4개월 연속 3%대의 고물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2월 4일 발표한 ‘2022년 1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월급 빼고 모두 다 오른다.”라는 불만과 탄식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전년 동월 대비 농산물(4.6%)을 비롯한 축산물(11.5%), 수산물(0.5%) 등 농·축·수산물은 6.3% 각각 상승하였고, 석유류(16.4%)를 비롯한 가공식품(4.2%) 등 공업제품은 4.2% 상승하였으며, 전기‧수도‧가스는 2.9% 상승하였고, 외식(5.5%)과 집세(2.1%) 등 오르지 않은 품목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서민들의 체감물가인 생활물가지수(구입 빈도가 높고 지출 비중이 높아 가격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144개 품목으로 작성한 지수)는 더 올라 4.1%다. 더 큰 걱정은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대내외적 요인이 많아 고물가 장기화까지 우려되고 있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인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는 지난달 3%로 올라섰다. 근원물가가 2012년 1월 이후 1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른 것이다. 국제 유가 상승과 농산물 가격의 급등이 한번 오르면 쉽사리 내려가지 않는 외식 등 서비스업과 공산품 가격의 인상으로 옮겨붙었다.
근원물가의 기조적 상승은 물가가 일시적인 공급측 충격에 따라 급등하는 것이 아닌, 장기적인 상승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가 상승세를 더욱 자극할 것으로 관측되는 요인은 잠시 주춤했던 국제 유가 상승이다. 지난 2월 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선 배럴당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2.01달러(2.28%) 오르며 90.27달러에 거래됐다. 올해 첫 거래일인 지난달 3일(76.08달러)에 비해 무려 19% 가까이 오른 수치로, WTI 값이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선 건 2014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한국은행도 최근 물가 상승 압력이 석유류 등 일부 품목에 국한되지 않고 근원품목(식료품·에너지 제외)으로 확산하고 있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2.5%보다 크게 높아질 것이라 예상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2월 13일 공개한 ‘BOK이슈 노트’에 실린 '물가상승압력 확산 동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충격으로부터의 회복과정에서 수요압력이 점차 높아지는 가운데 에너지·원자재가격 상승, 글로벌 공급 병목 등의 영향이 더해지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일부 품목에 국한되지 않고 전반적으로 확대돼 물가 상승 품목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물가 상승을 압박하는 요인도 수두룩하다. 고공행진 중인 국제유가의 상승분은 조만간 국내 기름값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인상이 미뤄진 전기·가스료 등 공공요금도 3월 대선 이후 오를 것이 뻔해 보인다. 4월과 6월이면 각각 유류세와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가 종료된다. 대외적으로도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여전히 계속되고,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도 계속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회원국 전체의 지난해 전년 대비 물가상승률이 6.6%로 1991년 7월 이후 최고치다.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가 글로벌 인플레이션 영향 속에 ‘슬로플레이션(경기둔화 속 물가상승)’을 거쳐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는 이유다.
소득은 높아지지 않는데 오히려 물가만 치솟다 보니 서민들의 지갑은 얇아지고, 한숨은 높아지며, 살림살이는 피폐해지고, 삶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생경제의 파탄을 막기 위한 정부의 물가 관리 대책이 그 어느 때보다 화급하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존 C. 머터(JOHN C. MUTTER)’ 교수는 ‘재난 불평등(The Disaster Profiteers)’에서 ‘왜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할까?’라는 부제로 재난의 불평등을 강조하고 “재난의 상황은 늘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며, 자연보다는 인간이 인간에게 더 큰 피해를 준다.”라고 역설했다. 고물가 시대에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 참으로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반기에는 물가가 오르겠지만 하반기에는 하락할 것이라는 ‘상고하저'를 예상하고들 있지만 물가 안정 대응에 있어 낙관론은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음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결국 시중에 풀린 돈을 흡수하는 금리 인상 등 통화 정책이 필요한데, 최근 들어 오미크론이 폭발적 확산세를 보이면서 적극적으로 긴축재정을 쓰기도 어려워졌다. 그만큼 물가 잡기가 더 힘들어졌다. 따라서 힘겨운 상황이지만 시기와 규모를 치밀하게 고민하고 물가 관리의 고삐를 바짝 조여야 한다. 우선 유류세 인하 조치를 연장하여 시행하고, 공공요금과 제품가 인상 시기를 분산하여 시행하며, 선제적 수급책 마련 등 서민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아픔과 애환을 보듬어줄 정교하고 치밀하며 다양한 물가 안정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現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