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중대한 실수로 빚어진 '중대재해처벌법'

모호한 기준에 노사, 기업간 분쟁 가능성 기업 경영 위축시키는 '대인지뢰'될 수도

2023-02-27     유현희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한 달이 지났다. 법 시행 이전부터 기업들이 우려했던 일들이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제도의 취지를 넘어선 부작용 조짐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 ‘1호 기업’이라는 불명예를 짊어지지 않기 위해 송사를 불사한다. 위험한 일을 외주화해 처벌을 피하려는 편법도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 법의 지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처벌 수위만 명확할 뿐 적용방법이나 기업이 재해를 막기 위해 취해야할 의무는 모호하기 그지없다. 중대재해법은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 1년 이상의 징역을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처벌 규정이 징역 ○년 이하로 명시돼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기업들은 이를 두고 과도한 처벌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코스닥협회가 최근 71개 기업들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개정과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94.6%에 달했다. 기업 뿐 아니라 지자체까지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는 중대재해처벌법 및 시행령 개정 및 보완을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서울시가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조항은 시행령 8조 '필요한 인력을 갖추어', '필요한 예산을 편성·집행할 것' 에 '필요한'이라는 표현이 추상적이어서 기준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안전·보건 확보 의무 대상을 '사업주나 법인 또는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이라는 부분에서 ‘실질적’이라는 부분이 책임소재를 두고 법적 공방을 벌일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건설현장이나 제조공장 뿐만 아니라 유통업계 역시 중대재해처벌법에 우려를 표한다. 이미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여부를 두고 노사 갈등도 불거졌다. 바로 쿠팡의 50대 근로자가 최근 사망한 사건이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던 50대 근로자는 회사에서 병원으로 이송돼 두달여간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공공운수노조는 해당 직원 사망에 “쿠팡의 안전대응 체계 문제로 고인이 빠른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만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까지 쿠팡 근로자의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병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중대재해처벌법령 FAQ>에 따르면 이번 사례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 책자에는 '법 시행일(2022년 1월 27일) 이전에 사고 또는 질병이 발병했으나 시행일 이후 사망한 경우에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지병인 경우도 적용 대상이 아니다. 쿠팡측은 “구급차가 도착할 당시 해당 근로자는 의식이 있었고 코로나19로 인해 병상이 부족해 병원을 전전하다 조치가 늦어진 것을 회사의 늑장 대응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쿠팡은 해당직원에게 주당 33시간을 근무토록 했으며 입원기간 동안 생활비도 지원했다. 현재의 중대재해처벌법은 모호한 기준 때문에 제2, 제3의 쿠팡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모호한 기준은 불필요한 분쟁의 불씨가 된다. 산업현장에서 부상이나 사망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법안이 필요함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예방보다 처벌에만 초점을 맞춘 법안은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뿐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보완이 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