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지난 3월 4일 경북 울진에서 시작된 산불이 닷새째 계속되는 가운데 강원 삼척ㆍ동해ㆍ강릉ㆍ영월 등 동해안 일대로 동시다발적으로 급속히 번지면서 피해 면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피해 규모도 걷잡을 수 없이 초대형 산불로 커지며, 생계 터전 및 산림자원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산림청은 3월 7일 울진 서남쪽 화선(火線) 제압을 목표로 진화 활동을 벌였지만, 진화 진도는 50% 수준에서 크게 진전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관건은 불길이 언제 잡히느냐다. 소방청은 이들 지역에 전국 ‘소방동원령 2호’를 발령하고 총력 대응하고 있고, 이날 오후 4시 기준으로 9,738명(소방·경찰·해경·군인 등 6,141명, 산림청 진화대 1,122명, 공무원 2,485명)의 인력과 헬기 92대, 차량 706대가 산불 진화에 투입해 전방위적으로 산불과 사투를 벌였지만, 화선이 워낙 길고 강풍과 연무로 진화가 여의치 않았다. 현재 전국에서 진행 중인 산불은 울진·삼척을 포함해 총 4곳으로 이날 같은 시각 기준 울진·삼척 산불의 진화율은 50%가량, 영월의 진화율은 60%, 강릉·동해 90%, 대구 달성 40% 등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울진·삼척 등 동해안 산불로 인해 3월 7일 오후 6시까지 울진 16,913ha, 삼척 772ha, 강릉 1,900ha, 동해 2,100ha 등 산불 영향구역 면적 기준 2만1,765㏊의 산림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산불 관련 통계가 있는 1986년 이후 피해 면적 기준으로 역대 최대 피해 규모의 산불을 기록한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 면적인 2만3,794㏊에 육박한 수준이다. 이날까지 피해 면적(2만1,765㏊)은 서울시 면적(6만520㏊)의 35.96%에 해당하여 1/3을 넘고, 여의도 면적(290㏊·윤중로 제방 안쪽 면적)의 75.1배에 해당하며, 축구장(0.714㏊)이 3만483개 모인 넓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이번 산불로 570개 시설이 피해를 봤고, 울진 272개, 동해 66개 등 348개 주택이 소실됐으며, 문화재 중에서는 동해시 어달산 봉수대(강원도 기념물 13호)가 피해를 봤다. 또한 이번 산불로 인해 218세대 332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307세대 387명이 마을회관, 경로단, 숙박시설 등 임시주거시설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발화 원인은 어처구니없게도 울진에서 발화해 삼척으로 번진 산불은 담뱃불 실화로 인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고, 강릉시 옥계와 동해시 일대를 태우고 있는 산불은 한 주민이 자택과 인근 빈집에 토치로 불을 지른 게 산으로 옮겨붙었다. 참으로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한편, 정부는 이번 산불로 인한 생활기반 상실 등 극심한 피해 복구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해 지난 3월 6일 경상북도 울진군과 강원도 삼척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고, 강릉·동해 등 다른 피해지역에 대해서도 피해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가로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신속하게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최근 발생한 산불들의 발화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 고의나 과실 여부가 확인되는 경우 법에 따라 엄정 조치하겠다.”라고 정부 산불 방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더불어 건조한 기상과 국지적 강풍으로 인해 대형산불 발생 위험이 높아 이달 5일부터 내달 17일까지(44일간) ‘대형산불 특별대책 기간’으로 정하고 전 행정력을 동원해 산불 방지에 총력 대응한다고 밝혔다.
올해 산불의 양상은 전국적으로 규모가 커지면서 산림은 물론이고 도심 주택가나 주요시설까지 위협하고 있다. 기후변화 영향 등의 여파로 산불 발생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행정안전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5일까지 발생한 산불은 모두 245건으로, 지난해 동기(126건)보다 무려 94.4% 증가했다. 이는 최근의 기후 위기 영향이 크다. 공기 중의 수분함량을 나타내는 ‘상대습도’보다는 목재 등의 건조지수를 나타내는 ‘실효습도’가 화재 발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난겨울에는 50년 만에 최악의 ‘겨울 가뭄’이 나타났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강수량은 1973년 관측 이래 최저치인 13.3㎜로 동해안 지역이 바싹 말라 있다. 또한, 동해안 지역 특유의 국지적 강풍인 양양과 간성 사이의 ‘양간지풍(襄杆之風)’과 양양과 강릉 사이의 ‘양강지풍(襄江之風)’이 맹위를 떨치는 데다, 동해안 지역에 유독 많이 분포하고 있는 수종인 소나무는 잎과 가지에 테르핀 등 정유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서 불에 잘 탈뿐만 아니라 산불 대형화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가지와 잎이 무성한 지엽(枝葉)이나 수관(樹冠)만 타며 지나가는 ‘수관화(樹冠火)’는 높은 화염 강도와 빠른 확산 속도는 물론 비화(Spot fire)를 일으켜 막대한 손해를 입히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최근 10년간 산림화재를 원인별로 살펴보면 입산자 실화(大火)가 1,594건(33.6%)으로 가장 많이 발생하였고, 이어 논·밭두렁 소각 717건(15.1%), 쓰레기 소각 649건(13.7%) 등의 순이었다. 이렇게 봄철에 산불이 빈발하는 원인은 대기가 매우 건조한 상태에서 강풍이 불어 바싹 마른 나무가 불쏘시개처럼 빠르게 타들어 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봄이 되면서 풀린 따뜻한 날씨로 산을 즐기는 입산자들의 실화와 농사철을 앞두고 논·밭두렁을 태우는 행위나 불법 소각에서 기인한다. 결론적으로 봄철 산불 빈발의 주범은 건조한 산림, 강한 바람, 테르핀 함유 소나무, 부주의한 인재(人災) 등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산불은 진화보다 예방이 정답이다. 건조와 강풍을 만나는 날은 얼마나 많은 눈과 발길이 산불 위험 요인을 제거하고 발화점을 감시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대부분 산불은 사람의 부주의에 의한 인재(人災)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산불 발생 위험도가 높은 통제지역은 출입하지 말고, 취사와 야영은 허용된 구역에서만 실시하며, 산에서는 라이터, 담배 등 화기(火器), 인화(引火) 물질 및 발화(發火) 물질을 소지하거나 흡연을 절대적으로 금하고, 산림과 가까운 곳에서는 논‧밭두렁이나 쓰레기 등의 소각해서는 아니 된다. 봄철 논밭에 사는 생물 조사한 결과 해충(害蟲)은 11%에 불과하고, 나머지 89%는 해충을 잡아먹는 천적인 거미와 같은 익충(益蟲)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논·밭두렁 태우기는 해충 방지 효과가 거의 없다. 장기적으로는 침엽수는 활엽수보다 불도 잘 붙고, 불길도 오래 지속되는 점을 고려하여 산불 피해지역 복구 조림(植树) 시 산불에 취약한 침엽수보다는 활엽수로 방화(防震) 수림을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산림 연접지에서는 화목(火木)보일러 사용을 자제하고, 벌채(伐採) 부산물이나 산불 피해목 등 미이용 바이오매스(Biomass)를 사전 제거하며, 산불 발생 시 진화용 헬기의 신속한 투입을 위해 계류장 및 진입로를 확장하고, 동절기 담수지 결빙 방지 장치를 운용함으로써 효과적인 산불 진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물론 진화 장비를 현대화하는 등 체계적이고 유연한 선제적 대응책을 서두를 것은 당연지사다. 초기 신속한 진화에 필요한 시스템을 갖추고 산불에 대한 시민들의 각별한 주의와 감시 활동을 강화하는 데 한 치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며, 산불이 꽃소식보다 먼저 봄을 알리는 불상사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명제임을 각별 유념하고 실행으로 답해야 한다. 특히, 선거가 있는 짝수 해에 유독 대형 산불이 발생했던 뼈아픈 징크스(Jinx)가 재현되지 않도록 주위를 철저히 살피고 소중한 산림자원을 지키고 보호하는 데 매진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장기화하고 있는 산불 진화에 정부의 역량을 총 집주(集注)하여 조속한 진화로 소중한 산림자원을 보호하여야 할 것이다. 매년 3월만 되면 연례 행사처럼 반복되는 산불로 나라 전체가 ‘위기’를 맞는 만큼 이제라도 산불 대책 총점검에 나서야 할 것이다. 산불이 잦고, 큰 피해가 집중되는 강원도와 경북지역에 대한 산림정책을 정교하고도 치밀하게 다듬어 적극적으로 실행할 때다. 땜질식 처방만 형식적으로 나열할 게 아니라 과학적인 감시 시스템 구축 등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산불 대책이 강구되어야만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