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대재해처벌법, ‘죽음의 사슬’ 끊는 마중물 되길

2022-03-13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매일일보] 2018년 12월 11일 발생한 태안화력발전소 고(故) 김용균씨 압사사고, 2020년 4월 29일 발생해 38명이 사망한 이천물류창고 건설현장 화재사고, 2020년 5월 21일 발생한 현대중공업 아르곤 가스 질식사고와 같은 ‘산업재해’와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7년 동안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로 영유아 등이 사망하거나 폐 손상 등 심각한 건강 피해(2016년 5월 기준 사망 266명을 포함 1,848명)를 입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2014년 4월 16일 발생해 304명이 사망한 세월호 사건과 같은 ‘시민재해’로 인한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빈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21년 산업재해사고 사망자(산재승인 기준 공식통계)는 828명에 이르고 있고, 여전히 추락·끼임 등 재래형 산업재해 사고도 간헐적이지만 꾸준히 발생하고 있으며, 안전관리 체계 역시 실질적인 정착이 아직은 미흡한 것도 사실이다. 산업재해사고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며,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산업재해만큼은 여전히 후진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참담한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업주, 법인 또는 기관 등이 운영하는 사업장 등에서 발생한 ‘중대산업재해’와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위험한 원료 및 제조물을 취급하면서 안전ㆍ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하여 인명사고가 발생한 ‘중대시민재해’의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및 법인 등을 처벌함으로써 근로자를 포함한 종사자와 일반 시민의 안전권을 확보하고, 기업의 조직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중대재해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2021년 1월 26일 제정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2022년 1월 27일 시행된 지도 어느덧 한 달 보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과연 안전을 우선시하고 인명을 중시하는 풍토로 바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우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 범위는 상시 근로자가 5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의 사업주(개인사업주에 한정) 또는 경영책임자 등에게는 이 장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하며, 50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건설업의 경우에는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공사)에 대해서는 공포 후 3년이 경과한 날(2024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며,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에게 노동자 위험방지 의무를 부과하면서 처벌 수위를 높이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종사자의 안전ㆍ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할 의무를 지게하고(법 제4조),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제3자에게 도급, 용역, 위탁 등을 행한 경우 제3자의 종사자에 대한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부담시키고(법 제5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하고(법 제6조), 법인 또는 기관의 경영책임자 등이 처벌 대상이 되는 위반 행위를 하면 그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그 법인 또는 기관에 대해서도 벌금형을 부과한다(법 제7조). 또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생산ㆍ제조ㆍ판매ㆍ유통 중인 원료나 제조물의 설계, 제조, 관리상의 결함이나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설치, 관리상의 결함으로 인한 그 이용자 등의 생명, 신체의 안전을 위하여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조치를 하는 등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부담시키고(법 제9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시민재해에 이르게 한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하고(법 제10조), 법인 또는 기관의 경영책임자 등이 처벌 대상이 되는 행위를 하면 그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그 법인 또는 기관에 대해서도 벌금형을 부과한다(법 제11조). 한편,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이 법에서 정한 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재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 해당 사업주, 법인 또는 기관은 중대재해로 손해를 입은 사람에 대하여 그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지게 하며(법 제15조), 정부는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대책을 수립ㆍ시행하도록 하고, 사업주, 법인 및 기관에 대하여 중대재해 예방사업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며, 그 상황을 반기별로 국회 소관상임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법 제16조). 특히,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하여 사망의 결과를 발생한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법 제10조제1항),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또는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를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법 제10조제2항). 여기서 ‘중대산업재해’란 산업재해 중 △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결과를 야기한 재해를 말한다. 또한, ‘중대시민재해’란 특정 원료나 제조물,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관리상 결함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재해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발생 △ 동일한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결과를 야기한 재해를 말한다. 또한, 법인 또는 기관의 경영책임자 등이 그 법인 또는 기관의 업무에 관해 이 법에 따른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산업재해’를 발생하면, 그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그 법인 또는 기관이 그 위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 업무에 관하여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 법인 또는 기관 종사자가 사망한 경우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고(법 제11조제1호),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또는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법 제11조제2호). 속단은 조심스럽기에 좀 더 지켜봐야 할 사안이지만, 고용노동부에서 지난 3월 8일 발표한 ‘보도 설명자료’에 의하면 올해 1월 27일부터 2월 26일까지 한 달간 일선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사망 산업재해는 35건 발생하여 42명 사망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2건 발생, 52명 사망)보다 발생 17건, 사망 10명이 줄었다는 점에서 이 법의 유용성은 일단 있어 보인다. 문제는 이 법의 모호성과 포괄성 및 추상성으로 인해 현장의 법 적용에 있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 당시부터 학계와 법조계와 경영 현장에서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문제가 있다면 빨리 개선하는 것이 정답이다. 이 법의 목적이 단지 ‘처벌’이 아니라 중대재해의 ‘예방’에 있음에도, 불명확하거나 미비한 규정들을 그대로 두고 법의 실효성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처벌만으로 산업재해를 방지할 수 없기 때문이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예방에 중점을 둔 적극적 행정이 요구되며, 이는 법이 일관성 있게 해석·집행될 것이라는 국민의 높은 신뢰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보완책은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우선, ‘실질적’이라는 모호한 표현과 ‘필요한’이라는 포괄적·추상적인 표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예컨대, “다만,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그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에 한정한다(법 제5조제1항 단서).”와 “다음 각 목의 사항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인력을 갖추어 중대시민재해 예방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할 것(시행령 제8조제1호)” 및 “다음 각 목의 사항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편성ㆍ집행할 것(시행령 제8조제2호)” 등 ‘실질적’이라는 표현과 ‘필요한’이라는 표현을 더 구체적인 표현으로 개정해 명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상시근로자의 범위를 놓고 중앙행정기관 간 상반된 해석을 내놓고 있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법조계에선 파견근로자가 상시 근로자에 포함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면서 고용노동부와 법무부 간 의견 조율을 촉구했다. 국내 회사의 해외 현지법인에 대한 법률 적용 여부를 둘러싼 고용노동부와 법무부 간 상반된 법 해석은 국민에게 큰 혼란을 줄 뿐 아니라 법 집행의 신뢰성과 예측 가능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따라서 관련 부처의 통일된 법 해석과 정책 제시가 필요하다.  더불어, 오늘날 재난의 양상은 대형화·복합화·다양화로 진화하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주장했다. 근대산업이 지속 발전함에 따라 과거보다 더 큰 위험을 마주하게 되며, 일단 확장된 위험은 인간의 제한된 능력으로는 통제가 불가능 할 정도로 급속하게 확장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위험이 일상화된 위험사회로 진입했다.”라고 말한 바도 있다. 기술 발달과 함께 잠재적 위험 역시 증가하는 위험사회에서 재해는 경영자의 예측 가능성에서 벗어난 요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기에 경영자에 대한 처벌 강화가 이루어지는 만큼 그 책임 소재에 대해서도 주도면밀하고 보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대와 우려가 혼재되어 상호 충돌과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산업재해 사망은 무엇보다도 기업에 의한 살인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안전관리시스템의 부재, 하도급을 포함한 위험의 다단계 구조, 차별받는 비정규직, 열악한 현장 노동 환경, 잘못된 누적 관행 등을 해결하지 않는 한 산업재해 사고는 결단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사용자를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산업재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안전보건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 데 입법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의무와 처벌을 회피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안전보건상의 의무가 무엇인지 꼼꼼히 살펴보는 게 우선이며 안전한 사회로 가는 첩경임을 명료한 의식으로 바라볼 일일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하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은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다고 해서 사업주, 경영책임자 등이 무조건 처벌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위반하여 발생한 중대산업재해에 한해서 사업주,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한다. 안전보건확보의무 위반과 의무 불이행에 대하여 미필적 고의를 포함해 고의가 있고, 사망이나 부상 또는 질병이라는 결과가 발생하고, 결과 발생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있고, 안전보건확보의무 위반과 결과 발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돼야만 처벌한다. 덧붙여 사업주, 법인 또는 기관은 손해배상책임을 피할 수 있다. 법인 또는 기관이 업무에 관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을 결단코 지지 않는다. 앞으로 여러 가지 깊은 고민과 수많은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기업의 부담이 가중되겠지만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야말로 중대재해 피해자를 위한 법으로 열악한 일선 산업현장에서 위험하게 일하는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인 만큼 어떠한 산업현장에서도 ‘죽음의 사슬’을 끊는 마중물이자 버팀목으로 우리 사회에 안전을 담보할 한줄기 단비를 내리게 하는 레인메이커(Rainmaker | 비를 내리게 하는 인디언 주술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