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불안한 출발
2023-03-21 송병형 기자
“임기 시작이 50일 남은 시점에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일단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20일 당초 공약이던 ‘광화문 대통령 시대’ 대신 ‘용산 대통령 시대’ 개막을 공식화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졸속 결정’이라는 비판 여론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을 위해 반드시 청와대에서 벗어나겠다’는 당선인의 진정성이 묻어난 발언이라고 평가한다.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이명박 정부, 그리고 문재인 정부까지 1987년 민주화 이후 국민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청와대를 벗어나려는 역대 정부의 시도는 예외 없이 모두 실패로 끝났다. 모두 청와대에 입주한 상태에서 추진됐고, 보안과 경호 등 여러 난제에 막혀 청와대라는 현실적 인프라에 안주하고 말았다. 윤 당선인은 일단 청와대에 들어간 뒤 대통령실 이전을 추진할 경우 자신도 이런 전철을 그대로 답습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윤 당선인은 “집무실 이전이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제가 어렵다고 또 다시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다면 이제 다음 대통령은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윤석열 정부에서도 ‘탈(脫) 청와대’에 실패한다면 이후 대선에서 누가 청와대 이전 공약(公約)을 내놓더라도 국민들은 공약(空約)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런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졸속 결정’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 1월 27일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계획’을 발표하면서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2019년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광화문 이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검토 결과를 내놓았지만, 윤 당선인은 “경호나 외교 접견 문제는 우리가 충분히 검토했다. 인수위 때 준비해서 임기 첫 날부터 거기(광화문 정부청사)에서 근무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대선 승리 후 며칠 만에 말이 달라졌다. 윤 당선인은 20일 기자회견에서 “기존에 들어가 있는 정부 기관의 이전 문제라든지 그리고 대통령 경호라고 하는 것을 최소화한다 하더라도 광화문 인근 지역에서 거주하시거나 그 빌딩에서 근무하는 분들의 불편이 좀 세밀하게 검토가 안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선인 신분으로 이 보고(대통령실 광화문 이전 공약에 대한 검토)를 한번 받아보니까 광화문 이전이라는 것은 시민들에게는 거의 재앙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당선 확정 직후부터 제가 보고를 받았는데 광화문 이전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우려되는 안보 공백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또 이전 비용이 최소 1조원을 넘는다는 민주당 측 주장에 대해서도 터무니없는 액수라고 한다. 하지만 ‘광화문 이전은 문제없다’던 호언장담이 대선 승리 후 단 며칠 만에 뒤집어졌다. 국민들이 윤 당선인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윤 당선인은 이제 이런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해야 할 과제를 안았다.
국민들은 또 용산 시대 개막이 단순히 공간의 변화에 그칠지 아니면 윤 당선인이 약속한 대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청산과 진정한 소통으로 이어질지도 예의주시할 것이다. 시작부터 윤 당선인의 짐이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