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류층 “결혼은 투자, 지위 세습용”

2006-09-02     권민경 기자

상류층 겨냥한 결혼정보회사 ‘VIP상술', 배우자 상품 고르듯
상위 0.5% 최상류층 자녀 같은 집단 내에서 폐쇄적 결혼

‘천생연분’이란 서로 부부로 맺어질 수 있도록 하늘이 마련해준 인연을 뜻하는 말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연분이란 것은 결혼에 대한 이상적인 개념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런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한 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서울 모 대학의 대학원생이 발표한 석사논문 ‘최상류층 미혼자녀들의 생활양식을 통한 계급재생산 연구’ 에 따르면 ‘상위 0.5%안에 들어가는 최상류층 자녀들은 같은 집단 내에서 결혼하는 폐쇄적인 인간관계를 통해 지위를 더욱 강화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논문은 최상류층을 50대 기업의 소유자나 국회의원 및 장,차관급 이상으로 한정하고 그 자녀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최상류층 자녀들은 비슷한 지위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망을 통해 소위 그들만의 세계를 형성한다는 입증한 셈이다.

이 논문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소득분포 상위 0.5%안에 들어가는 소위 최상류층의 그들끼리의 결혼은 역대 한국 재벌의 혼맥 관계를 살펴보면 더욱 잘 드러난다.

한국의 재벌들이 한 두 다리를 건너면 모두 연결될 만큼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은 언론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지난해에는 참여연대 부속 참여사회연구소와 MBC가 공동으로 재벌들의 혼맥을 형상화한 도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혼맥도를 따라가면 보면 전직대통령은 물론, 장,차관급 인사들, 명문세가와 대부분의 재벌들이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의 대표적 재벌이라 할 수 있는 LG와 삼성그룹을 중심으로 거대한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LG는 두산, 한진, 현대, 대림, 경방 그룹 등과 혼인관계로 맺어져 있고, 삼성 또한 LG, 대상그룹, 동아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과 얽혀 있다.

한편 위 논문에 따르면 상류층 자녀들의 만남은 대부분 비공식적인 연줄망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주로 부모세대가 만들어 놓은 인적 관계망, 학교 등 교육기관을 통한 만남 등이 그것이다.

거주지 또한 서울 이태원, 평창동, 성북동 지역에 주로 몰려 있어 이를 통해 자신들의 계급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안방극장에 흔히 등장하는 신데렐라 형 재벌가 며느리는 그야말로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실제 이들 사회에서는 정계와 재계의 유력 가문에서 출생해 혼인을 통해 또 다른 재벌가로 흡수되는 것이 일반적 현실이다.

신분구조 재생산 폐해

이처럼 결혼을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는 상류층의 결혼문화는 일부 유명 결혼정보회사들의 상술과 결합해 신분구조 재생산이라는 폐해를 낳고 있다.

유명 결혼정보 회사들이 상류층을 겨냥해 운영하고 있는 이른바 ‘VIP클럽’은 인륜지대사인 결혼 상대자를 고르는 일을 마치 하나의 상품을 고르는 것처럼 전락시킨다.

결혼정보회사의 이런 VIP서비스를 받기 위한 상류층의 조건은 우선 가족재산이 50억 이상, 부친이 2급 이상 공무원이거나 대기업 사장급 이상, 부모와 당사자 모두 명문대 출신이어야 한다. 또 당사자의 외모가 준수해야 함은 기본이고, 전문직에 연봉 1억 이상이 되어야 명문가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결혼정보회사들의 이런 VIP마케팅은 실상 겉포장만 요란한 경우가 많다. 그들이 내세운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키는 상류층 회원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개천에서 용난’ 정도의 전문직 남성과 졸부 아버지를 둔 여성, 혹은 졸부의 아들과 조건은 약하지만 얼굴이 예쁜 여성 등의 만남이 그나마 성공적인 경우이다.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그야말로 최상류층 자녀들은 숫적으로 드물뿐더러 만남과 결혼 또한 철저하게 폐쇄된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