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2021년 7월 2일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제68차 무역개발이사회’ 마지막 회의에서 한국의 지위를 기존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의견 일치(Consensus)’로 변경하고 선진국으로 인정했다. 한국이 UNCTAD에 가입한 지 56년 만이다. 이에 앞서 2021년 6월 22일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6번째로 큰 무역을 위한 원조 공여국(Aid-for-Trade donor)으로 도약했고, 유엔개발계획(UNDP)이 매년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를 봐도 2020년 기준 대한민국은 22위로 선진국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대한민국을 포함해 39개국을 선진 경제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등 국격상승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3년 차에 접어들며 일상 멈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모임이나 취미는 물론 야외 활동도 멈춘 지 오래다. 불안과 불편, 만족감이 사라진 채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기란 참으로 어렵고 쉽지 않다. 게다가 경제는 더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개월째 3%대를 기록하고 있고, 향후 상승 요인이 많아 4%를 넘어설 가능성도 매우 크다.
더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 악화, 경제성장 둔화, 불확실성 증폭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릴 처지에 놓였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인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급등해 물가상승을 부추기고, 고물가는 실질소득을 감소시켜 민생을 더욱 악화시키고, 투자와 소비 감소에 따른 경기침체를 불러일으키며, 저소득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가중하여 불평등마저 심화시키고 있다. 10년 만의 고물가는 인플레이션 속 경기침체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 경기침체 + 물가상승)' 우려까지 낳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엔(UN)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 |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는 지난 3월 18일(현지 시각) ‘2022 세계 행복보고서(2021 World Happiness Report)’를 공개했다. 행복지수(HPI | Happy Planet Index)는 국가별로 각 1,000명의 국민에게 자신들의 삶의 만족도를 물어 조사한 갤럽의 월드 폴(World Poll)을 바탕으로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GDP), 기대수명, 사회적 지지, 선택의 자유, 부정부패, 관용 등 6가지 항목의 3년 치 자료를 분석해 산출한다.
여기서 ‘행복지수(HPI)’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스스로 측정하는 지수’로 영국의 심리학자 로스웰(Rothwell)과 인생 상담사 코언(Cohen)이 만들어 2002년 발표한 행복 공식으로 이들은 행복이 인생관 · 적응력 · 유연성 등 개인적 특성을 나타내는 P(personal), 건강 · 돈 · 인간관계 등 생존 조건을 가리키는 E(existence), 야망 · 자존심 · 기대 · 유머 등 고차원 상태를 의미하는 H(higher order) 등 3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보고, 이들 3요소 중에서도 생존 조건인 E가 개인적 특성인 P보다 5배 더 중요하고, 고차원 상태인 H는 P보다 3배 더 중요한 것으로 판단하여 행복 지수를 P+(5×E)+(3×H)로 공식화하였다.
이번에 SDSN이 공개한 2019∼2021년의 한국의 행복지수는 5.935점으로 전체 146개국 가운데 59위에 그쳐 2020년 62위, 2019년 54위, 2018년 57위, 2017년 56위, 2016년 58위를 기록한 것을 비춰보면 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필리핀(60위, 5.904점)이나 중국(72위, 5.585점)보다는 높지만, 일본(54위, 6.039점)이나 그리스(58위, 5.948점)보다는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만 따져보면 최하위권에 속했다. 한편, 1위는 7.821점을 받은 핀란드였고 덴마크(7.636점), 아이슬란드(7.557점), 스위스(7.512점), 네덜란드(7.415점)가 뒤를 이었다.
한국은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GDP)과 기대수명 항목에서는 비교적 높은 수치를 기록했지만, 나머지 사회적 지지, 선택의 자유, 부정부패, 관용 등의 항목에서는 낮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고 고령화 사회 속에서 평균수명이 연장된 점이 반영되어 있다. 반면 공동체 의식이나 도덕성, 포용성 측면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사실이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3월 24일 발표한 ‘2021 한국의 사회지표'를 살펴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2명 이상인 22.2%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했고, “아무도 나를 잘 알지 못한다.”라고 느끼는 비율도 16.5%로 나타났다. 여성(25.1%)이 남성(19.1%)보다 사회적 고립감을 더 느꼈으며, 연령별로는 60대 이상 고령층이 외롭다고 답한 비율이 31.4%로 가장 높았다. 또한 자신이 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의 비율은 73.2%로 전년보다 13.6% 포인트 상승했다. 남성(74.6%)이 여성(71.8%)보다 2.8% 포인트 높았으며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일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더 높았다.
행복(Happiness)은 희망을 그리는 상태에서의 좋은 감정으로 심리적인 상태 및 이성적 경지 또는 자신이 원하는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만족하거나 즐거움과 여유로움을 느끼는 상태,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안심하는 것을 뜻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고, 제31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국민의 안전과 복지 그리고 삶의 질을 높여나가는 데 있다. 사람이 최우선인 대한민국과 국민의 행복한 삶을 지속 가능케 하는 대한민국을 희망해 본다.
경제적 풍요만으로 선진국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선진국의 위상에 걸맞도록 풍요 속에 뒤처진 사람들을 돌보고 함께하는 문화, 약자를 포용하고 배려하는 문화, 외면보다 내면을 중시하는 문화가 꽃을 피울 때 사회관계는 자연스럽게 회복되고 행복지수(HPI)도 가파르게 높아질 것이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지수와 행복지수의 격차를 좁혀나가야 한다. 결국, 소외된 한숨까지 국가의 복지가 충분히 감싸고 품고 보듬는 국가의 국민이 행복하지 않을 리 없다. 존중과 이해, 자아실현, 공동체 의식 확장 그리고 국가의 복지정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융합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가일층 노력하고 정려해 나가야 할 것이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가치 기준의 혼돈에 있다. 물질 만능의 소유란 개념의 확장과 소유의 영향력 지배가 아닌가 싶다. 내가 가진 소유와 상대방이 가진 소유와의 차이에 따라 평가를 받고, 때론 소유가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분열과 갈등 그리고 대립과 반목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우리 사회의 물질 소유 가치 때문이다. 이로 인해 차별받고 상처받아 생기는 ‘원한’과 ‘보복’ 심리가 원인일 수 있다. 우리가 그토록 물질적 성취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아직 외형의 화려함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큰 탓이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존재’보다는 ‘소유’를 더 중시하는 현대사회의 병폐를 비판한 데 깊은 공감과 인식을 공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