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 2개월 넘었는데 적용‧처벌 기준 모호…기업들 '고무줄 잣대' 우려

노동부 "첫 시행하는 만큼 신중 적용"…업계 "안전관리 원칙적 대응이 한계"

2023-03-31     최지혜 기자
안경덕
[매일일보 최지혜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2개월이 넘었지만 아직 처벌기준조차 명확하지 않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법 시행 전부터 규정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아직 적용 사례가 나오지 않아 법 시행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모습이다. 3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날 기준 중대재해법 적용을 위해 진행되고 있는 수사는 약 30건이다. 노동부는 중대재해법 시행이 시작된 올해 1월 27일부터 전국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에 법 적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수사를 하고 있다. 중대재해법 시행 2일 뒤인 지난 1월 29일 삼표산업의 양주 채석장 토사 붕괴사고로 노동자 3명이 사망했다. 사고 발생 2개월이 넘었지만 법적용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건설현장 중에서는 지난달 8일 경기 성남시 판교제2테크노밸리 업무시설 공사장에서 엘리베이터 설치 도중 노동자 2명이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동부는 시공업체인 요진건설을 중대재해법 처벌 대상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들 사고에 대한 수사는 몇달 째 이어지고 있다. 관할 경기고용노동지청 관계자는 “개별 사건의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밝히기 어렵다”며 “민감한 사항인 만큼 신중한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중대재해법 적용 사고 30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상태”라며 “중대재해법 관련 수사 대상이지만 추후 수사 과정에서 법 적용에 제외될 수 있어 대략적인 추정치 집계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이 첫 시행을 맞은 만큼 노동부도 법 적용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고 관련 검찰 지휘 하에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법원까지 도달한 사례는 아직 없다”며 “판례가 나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중대재해법 시행이 처음이다 보니 기존 수사 방식과 다른 측면이 있어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관련 사건보다는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형욱
수사 진척 속도가 늦어지자 법 적용 방식에 따라 중대재해법에 대응하려던 업계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재해사고에 대한 처벌 수위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이나 형사처벌에 한층 더해져 긴장감이 높다”며 “현재까지는 구체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사례가 나오지 않아 원칙에 충실한 안전관리를 적용하며 대응하며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시공 현장의 안전관리 수위도 높아졌다. 수도권의 한 건설현장 관계자는 “연초부터 국토부와 노동부에서 수시로 현장 점검을 나와 공정과 안전상태 등을 관리하고 있다”며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부터는 원청에서도 현장 안전관리와 부실시공 문제를 민감하게 관리하게 됐다”고 말했다. 5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은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및 법인의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사망자 1명 이상 또는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등이 발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