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원전비리 수사 100일의 명암

뿌리 깊은 비리 구조 파악했지만 고위층 연루는 못 밝혀

2013-09-04     최소연 기자

[매일일보] 검찰의 원전비리 수사가 5일로 100일을 맞았다. 수사진은 이번 수사를 통해 원전이라는 특수분야에서 종사하는 업체들의 장기간에 걸친 깊은 비리 구조를 파악하고 숱한 금품 제공 및 로비를 확인 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부패고리와 연결된 정부 고위층 등의 혐의를 밝히는 데는 한계를 보여 추후 수사 과정에서 어떤 ‘결과물’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에 관심과 기대가 집중되고 있다.

검찰이 지난 100일간 벌인 원전비리 수사로 드러난 비리 구조는 불량 부품을 납품하기 위한 시험 성적서 위조, 납품 편의를 받으려는 금품로비, 한국수력원자력 등의 임직원 인사 청탁 등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검찰은 지난 5월 29일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원전비리 수사단’을 설치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실마리는 신고리 1·2호기 등에 납품된 JS전선의 시험 성적서 위조 사실이 전부였지만 일명 ‘원전 마피아’의 뿌리 깊은 비리 구조를 상당히 파헤쳤다.

2008년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2호기, 2010년 신고리 3·4호기에 납품된 JS전선의 제어 케이블 등은 냉각재 상실사고(LOCA)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시험 성적서를 위조하거나 아예 열노화, 방사능 처리를 하지 않은 이른바 ‘생케이블’로 시험해 불량 케이블을 납품했다.

이 과정에는 JS전선은 물론 시험업체인 새한티이피, 시험 성적서 승인기관인 한국전력기술, 발주처인 한국수력원자력이 모두 연루됐다. 제어 케이블 등은 원전의 안전과 직결되는 안전성(Q) 등급 제품이고, JS전선이 편취한 돈은 179억원에 달한다.

대기업인 LS전선도 2006년 8월 하청업체인 A사가 공급한 냉각수 공급용 냉동기의 실링(밀봉) 어셈블리 시험 성적서를 위조해 울진원전에 납품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또한 방진 마스크 등 소모품 납품에서부터 아랍에미리트(UAE) 수출 원전에 설비를 공급하는 데까지 비리가 파고들었고, 일부 원전 부품의 국산화도 사기였다는 것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 글로벌 기업인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수많은 원전 업체가 벌인 대규모 금품로비의 실체와 인사청탁 관련 금품수수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조사 결과 드러난 금품비리의 규모는 가히 압도적이다. 송형근 한수원 부장(48)은 지난해 2월부터 지난 3월까지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의 설비 공급에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현대중공업 전·현직 임직원으로부터 17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른바 ‘영포라인’ 출신 브로커 오희택(55)씨는 2009년 3월부터 2011년 9월까지 한국정수공업의 원전 수처리 설비 공급과 관리용역 유지 등을 위한 로비명목으로 18억원을 받아 3억원을 여당 고위 당직자 출신 브로커 이윤영(51)씨에게 전달한 혐의가 있다.

또 이씨는 이 가운데 6천만원을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53)에게 건넸다고 진술해 전 정부 때 ‘왕차관’으로 불릴 정도로 실세였던 박 전 지식경제부 장관의 수뢰혐의를 잡아 원전비리 수사를 ‘게이트 사정’으로 진화시켰다.

이 가운데 한수원 전·현직 임직원만 20명에 달한다.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67)은 2009년 7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한국정수공업 대표로부터 납품계약 체결 등에 편의제공 청탁과 함께 1억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박기철 전 한수원 전무(61)와 이종찬 한국전력 부사장(57)도 2009년 4월부터 지난해 9월 사이에 원전 업체들로부터 편의제공 청탁과 함께 각각 1억3000만원과 26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인사청탁을 전제로 거액의 뇌물 등이 오고간 사실도 확인됐다. 김종신 전 사장은 2008년 11월 한수원 직원의 인사 청탁과 함께 H사 송모 전 대표(52)로부터 2000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송씨는 검찰에서 그전에도 김 전 사장에게 수차례 인사청탁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찬 한전 부사장도 2009년 10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송형근 한수원 부장으로부터 인사청탁과 함께 1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국가정보원 간부 출신인 윤영(57)씨는 국정원 재직 중이던 2011년 2∼5월 대학동기인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장관에게 한국정수공업에 우호적인 인물을 경쟁사인 한전KPS의 임원에 앉혀달라고 청탁했다고 진술했다. 실제 같은 해 5월 강재열(59) 한전KPS 전무가 임명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검찰 수사의 한계점도 지적되고 있다. JS전선이 불량 케이블 납품으로 무려 179억원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는데도 한수원 직원들에게 상품권 수백만원어치를 준 것 외에는 돈거래가 없었다는 것은 미스터리이다.

또 최중경 전 장관을 대상으로 한 인사청탁이 성공했지만 금품수수 부분은 확인되지 않았다. ‘영포라인’ 브로커가 한국정수공업 대표에게 로비자금을 요구하면서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77)을 거론했다는 주장도 실체가 없는 것으로 정리됐다.

한편 부산지검 원전비리 수사단은 지금까지 29명을 구속하고 15명을 불구속 기소했으며 10여 명을 수사하고 있다. 당초 수사 100일째인 5일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었던 원전비리 수사단은 박영준 전 차관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10일로 발표를 늦췄다.

원전비리수사단의 활동과 별개로 대검찰청이 추가로 수사의뢰된 사건을 배당한 전국 7개 검찰청에서도 원전 부품업체 직원 등 10명을 구속하고 3명을 조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