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0년 만의 4.1%대 고물가 충격, 취약계층 지원 서둘러야
[매일일보] 서민들의 생활고와 직결되는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매우 가파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급등한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이 국내 물가에 전이돼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면서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선행지표라 할 수 있는 생산자물가가 오르고 있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물가 상승은 실질소득 저하와 구매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소득 대비 소비의 비중이 큰 취약계층의 살림살이를 어렵게 하면서 서민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생계가 어려운 저소득층과 원자재가격 부담이 큰 중소기업이 ‘고물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비명과 한숨 소리가 더 크고 더 깊다. 저소득층과 영세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이 받을 충격을 줄일 대책이 당장 화급하다. 서둘러 별도의 세밀하고 발 빠른 지원 방안을 강구해야만 한다.
지난 4월 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3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6.06(2020=100)으로 1년 전인 2021년 3월보다 4.1% 상승했다.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물가 상승률은 최근 5개월 연속 3%대를 기록하다가 지난달 4%대로 뛰어올랐다. 상승 폭은 전월(3.7%)보다 0.4%포인트 확대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2021년 10월(3.2%) 9년 8개월 만에 3%대로 올라선 뒤 지난해 11월(3.8%), 12월(3.7%), 올해 1월(3.6%), 2월(3.7%) 등 5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보여왔다. 하지만 2022년 3월 소비자물가는 공업제품, 농·축·수산물, 전기·수도·가스, 서비스 등이 모두 오르면서 4%대 물가 상승을 견인했다. 구입 빈도가 높고 지출 비중이 높아 가격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144개 품목으로 작성한 지수로 체감물가를 나타내는 생활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무려 5.0%나 급등했다.
석유류 물가는 작년 3월보다 31.2%나 오르며,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를 1.32%포인트 끌어올렸다. 국제유가에 영향을 받는 공업제품 가격도 크게 올랐다. 외식비 상승률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4월(7.0%) 이후 가장 높은 6.6%를 기록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 2월 전년 동월 대비 7.9%가 올라 1982년 1월 이후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오는 4월 11일 발표되는 3월 CPI는 상승폭이 더 커질 전망이며, 영국은 6.2% 뛰었다. 올 3월 유로존 물가는 7.5%, 독일은 7.3%, 스페인은 9.8% 상승했다. 터키는 금리정책 실패가 겹치면서 무려 61% 폭등했다. 한국은행도 당초 올해 물가 상승률을 3.1%로 전망했지만 당분간 물가 상승률이 4%대를 유지하며 고물가 오름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 어두운 전망을 했다. 이 여파로 연간 상승률이 전망치(3.1%)를 웃돌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물가 상승세는 전 세계가 겪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그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잦아들지 않는 데다 세계 각국이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심해져 국제 유가와 곡물값이 급등한 탓이다. 정부는 지난 4월 5일 작년 11월부터 한시적으로 20% 내린 유류세를 5월부터 7월 말까지 석 달 동안 유류세 인하 폭을 기존 20%에서 30%로 내려 10%포인트 확대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영업용 화물차, 버스, 연안 화물선 등에 대해 경유 유가 연동 보조금을 3개월간 한시적으로 지급하고, 택시·소상공인 등이 주로 이용하는 차량용 부탄가스 판매 부과금도 3개월간 30% 감면하기로 했다. 잘한 일로 두 손 들어 환영한다. 그러나 유류세 인하는 기름을 많이 쓰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에 불과하다. 생활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에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될 수 없다. 또한, 할당관세 확대와 농·축·수산물 수입처 다변화 등의 물가안정 대책도 내놨지만, 구조적으로 치솟는 물가를 잡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따라서 별도의 취약계층 지원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만 한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는 고소득층보다 저소득 서민층에게 더 큰 충격을 주며 양극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당장 이달에 올린 전기요금과 가스요금부터 살펴봐야 한다. 면밀한 시장 점검과 공공요금 인상 억제, 선제적 수급 대책 등 모든 정책 수단과 역량을 집중하여 물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서민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줘야만 한다.
고물가는 통화정책은 물론 재정정책에도 적잖은 부담을 지우는 형국이다. 물가 상승은 시장금리를 끌어올리며 자연스럽게 한국은행에 기준금리 인상을 압박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은행은 조만간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리 인상으로 물가 불안 심리를 잡는 효과는 분명히 있겠지만, 취약계층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물가 상승으로 가뜩이나 줄어든 소비 여력이 금리 인상으로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준비 중인 2차 추가경정예산도 물가를 자극하고, 시장금리를 끌어올리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막 시작된 내년도 최저임금 협상에서도 물가는 가장 큰 변수가 아닐 수 없다. 노동계 측은 치솟는 물가를 내세우며 최저임금의 대폭적인 인상을 요구할 것이 뻔하고, 경영계 측은 같은 이유로 인하 또는 동결을 주장하며 첨예하게 대립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물가정책의 지혜로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대목들이다. 따라서 기준금리를 인상하되 취약계층을 품고 보듬을 수 있도록 재정 지출 확대 규모를 섬세하고 신중히 고려하고 결정해야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