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인 칼럼] 일본은 결국 '일본군 위안부 삭제'를 선택했다
2023-04-14 매일일보
올해 봄에도 어김없이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 검증 결과가 공개됐다. 예상했던 대로 왜곡된 역사 인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 노동자를 강제로 연행했다는 표현은 사라졌다.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주장도 들어갔다. 일본군 위안부에 일본군이 관여했다고 기술한 교과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특히, 요즘 들어 일본의 과거사 왜곡이 보다 노골적이고 집요해졌다. 지난 몇 달 간을 반추해 보면 더욱 더 분명해진다. 작년 말 일본 정부는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인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사도 광산이 조선인 노동자 1000여 명이 강제 동원된 노역장 이었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앞서 강제 노역으로 악명 높은 하시마(일명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희생자를 추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던 선례도 있다.
일본은 8월15일을 패전일이 아닌 종전 기념일이라 부르고 있다.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는 2차 세계 대전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추모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자신들은 원폭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일본 이해의 고전인 루스 베니딕트의 '국화와 칼'(1946)은 우리의 당혹스러움을 조금은 달래 준다. 항복 일주일 전만 해도 죽창을 들고 결사항전을 외치던 일본군이 천황의 패전 방송을 듣자 미군을 열렬히 환영하는 인파로 돌변한 상황을 세기의 인류학자는 '명예'로 풀어낸다. 세계에서 일본의 지위를 높이기 위한 전쟁이 실패하자, 천황의 침통한 목소리와 함께 '패전국의 명예회복'으로 그들의 목표를 재빨리 바꾼 것이다.
일본의 국민적 심성을 면밀히 관찰한 베니딕트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인의 영원불변의 목표는 명예다. 이 목적을 위한 수단은 그때의 사정에 따라 취해지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하는 도구들일 뿐이다." 그래서 심미의 상징인 '국화'와 폭력의 상징인 '칼'이 역사적 국면마다 시의적절하게 교차한다. 패전으로 인해 칼로부터 국화로 돌아설 것을 강요당하자 가해의 기억이 저절로 지워졌던 것이다. 아니, 가해자의 관점을 버려야 했다. 그런데 위안부 문제는 명예회복을 방해하는 최대의 걸림돌이었다. 희생자들의 온갖 증언이 쏟아져도 내가 한 짓이 '아닌' 것으로 일관해 온 심리적 배경이다.
한일 간의 여러 가지 역사적 문제 중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큼 풀리지 않는 역사적 난제도 드물다. 국제적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절대 부정의 입장을 고수하는 일본의 경직된 태도 때문이다. 이 문제가 정리되지 않고는 역사적 화해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일본은 결국 '일본군 위안부 삭제'를 선택했다. 일본 국민의 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합법적 정부의 선택이다. 일부 극우의 주장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가 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