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장기전으로 흐르고 국제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지속하면서 우리 경제에도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게다가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조치까지 겹쳐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 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공포가 더욱 커지고 있고, 원유와 가스 등 국제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물가상승 압박으로 고물가와 무역수지 악화를 불러와 경제 회복세의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19일(현지 시각)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로 지난 1월 전망치 3.0%보다 0.5%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은행(WB) 역시 지난 4월 18일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1%에서 0.9%포인트 낮춘 3.2%로 조정한 데 이어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날 올해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1월 전망치인 4.4%에서 무려 0.8%포인트 하향한 3.6%로 낮춰 발표했다. 2023년 전망치 역시 당초 3.8%에서 0.2%포인트 낮춘 3.6%로 하향 조정했다. 이처럼 세계 140여 개국의 2022년 성장률 전망치를 일제히 하향 조정하는 부정적 시나리오에 한국도 포함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지난 2월 3.0%로 제시했으나, 불과 두 달 만인 이달 들어 3.0%를 하회할 것이란 수정된 전망치를 내놓은 것도 결코 우연만은 아니다. 코로나 위기로 대규모 자금이 풀린 상황에서 지정학적 위기까지 겹쳐 물가 급등, 통화 긴축, 경기 부진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 경제성장률을 3개월 전보다 0.8%포인트 낮은 3.6%로 낮춘 이유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긴축적 통화·재정정책, 중국의 성장 둔화 등을 꼽았고, 성장 부진의 요인으로는 공급망 훼손, 유가 폭등뿐 아니라 민간 부채가 급증한 점을 지목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가계와 기업의 부채가 많이 늘었고 그 결과 경제가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는 진단이다. 가계·기업·정부 등 국내 3대 경제 주체가 짊어진 부채의 규모가 지난해 처음으로 5,000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4월 4일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매크로 레버리지(가계·기업·정부의 부채 총액)는 5,188조5,000억 원으로 전년 4,726조2,000억 원 보다 462조3,000억 원(9.8%) 증가했다. 위기 돌파를 위해 재정을 늘려야 하겠지만 가뜩이나 약한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과 경제 기반이 무너진 상태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를 바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 여파로 개발도상국 및 신흥국의 도미노 디폴트(Default | 채무상환 불이행)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일부 신흥국들은 민간과 공공 부채가 동시에 늘면서 이미 위기에 직면했다는 지적이다. 심각한 경제난에 빠진 스리랑카가 지난 4월 12일(현지 시각) 일시적으로 빚을 갚지 못한다며 디폴트를 선언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스리랑카 뿐만 아니라 중남미 엘살바도르, 모잠비크, 튀니지, 가봉, 에티오피아, 앙골라 등이 1년 이내에 디폴트에 직면할 수 있다고 관측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국제 채무상환 유예 프로그램 대상국으로 지정된 저소득 국가 73개국 중 약 56%인 41개국은 이미 부채가 부실화됐거나 부실 위험성이 높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빅스텝(Big step | 0.5%포인트 금리 인상)’ 및 '워세션(war-cession | 전쟁 상황에 촉발되는 침체 국면)'등이 현실화할 경우 펀더멘털이 취약한 국가들의 연쇄 디폴트는 ‘우려’가 아닌 ‘실제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스리랑카에 이어 부채 위기로 연쇄적 도미노식 디폴트 선언이 확산할 경우 세계 경제의 회복력은 약화하고, 글로벌 건전성이 흔들리며, 안전을 장담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서도 부채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경고음이 울린 지 오래다. 지난해 말 가계와 기업이 짊어진 민간부채 총량은 4,540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2배를 넘어섰다. 1,862조1,000억 원의 가계부채는 1년 새 7.8%나 늘어 2,00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고, 909조6,000억 원의 자영업 대출은 연내 1,0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2030세대의 빚은 지난해 말 475조8,000억 원으로 2년 새 100조 원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30세대가 보유한 부채의 부실 위험도 날로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청년층 중 신용 위험이 높은 ‘취약 차주’의 비중은 지난해 말 6.6%로 다른 연령층 평균인 5.8%를 웃돌았다. 특히, 2030세대의 가계 빚 가운데 3분의 1인 150조 원은 다중채무자가 진 악성 부채로 평가된다. 그동안 집값이 급등하고 주식 열풍이 불면서 지속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과 '빚투'(빚내서 투자)로 인해 부동산, 주식으로 자금이 쏠렸고,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차입금이 급증한 결과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세계 3위로 높고 기업부채 증가 속도는 세계 7위로 높은 수준이다. 가계와 기업의 줄도산이 봉착하면 한국 경제는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 빠져들 우려가 매우 크고 심각하다.
한국은행은 “금리로 물가를 잡겠다”라고 적극적인 금리 인상 계획을 밝히고 있다. 부채와 물가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금리 인상은 필요하겠지만 금리 인상으로 모든 문제가 만능으로 해결되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통화 긴축은 부채의 총량을 줄일 수 있겠지만 저소득층의 대출을 더 어렵게 만들어 취약층의 연쇄 도산을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1년 전보다 52조 원 늘어난 반면 가계 부채는 135조 원이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세금과 각종 공과금 등을 떼고 사용할 수 있는 가처분 소득보다 빚 증가 속도가 무려 3배나 빨랐던 셈이다.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은 전체 민간 부채를 서서히 줄여나가되 채무조정 프로그램으로 소상공인과 취약가구를 별도로 관리하는 핀셋 정책 공조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금리 인상의 충격은 빚을 내서 집 사고 주식·코인 등에 투자한 청년층과 취약계층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만약 집값까지 급락한다면 2030세대가 경제적 파산 위기에 내몰리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채무 재조정 등을 통해 가계부채 부담을 줄여나가고 부동산 대책도 집값의 급락을 초래하지 않는 종합적이고도 정교한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곳곳에 폭탄이 도사린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뇌관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제거하는 유연하고 치밀한 경제 운용이 불가피하다. 기준금리 인상이 숨 가쁘게 진행되면서 자칫하면 새 정부의 선심성 대출 규제 대폭 완화가 ‘약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다. ‘50조 원 추경’ 등 물가와 금리를 자극할 수 있는 각종 재정 살포 공약도 규모와 속도 조절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