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어설픈 합의 번복에 위장탈당쇼 묻혔다

2023-04-26     조현경 기자
[매일일보 조현경 기자] 지난 주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에 여야가 합의하면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극한 대립으로 치닫던 정국이 출구를 찾는 듯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여야 합의 사흘만에 사실상 합의 파기를 선언하면서 정국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국민의힘의 합의 파기에는 '정치적 야합'이라는 비판 여론이 크게 작용했다.  박 의장이 제안한 중재안은 검찰의 기존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권 가운데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수사권만 남기고 나머지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삭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두고 검수완박 정국의 혼란을 틈타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에서 정치인을 배제하는 '꼼수'이자 '야합'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이 같은 비판 여론은 갈수록 커져갔다. 앞서 '검수완박 반대' 소신을 밝히며 민주당의 협조 요구를 거부한 무소속 양향자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검수완박을 처리하지 않으면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번 중재안은 양 의원의 폭로를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비판 여론이 고조되면서 사흘만에 여야 합의는 사실상 백지화됐고, 국민의힘에는 민주당의 법안 처리 강행에 빌미만 제공했다는 뭇매가 쏟아지고 있다. 실제 당초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강행에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해 온 정의당은 국민의힘이 합의를 파기한 뒤부터 민주당과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로 검수완박 법안 저지에 나서더라도 민주당은 정의당의 도움으로 필리버스터를 중지시킬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하게 된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더욱 뼈아픈 것은 어설픈 합의 번복으로 위장탈당쇼로 궁지에 몰렸던 민주당에 숨통을 터줬다는 점이다. 지난 20일 민형배 의원이 국회 법사위 안건조정소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민주당을 탈당하자 민주당은 거센 역풍에 시달렸다. 일각에서는 '이승만 정권의 사사오입 개헌을 연상시킨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당시 민주당 내에서도 신랄한 비판이 나왔다. 이상민 의원, 박용진 의원, 조응천 의원 등 평소 쓴소리에 거침이 없던 소신파 의원들은 물론이고 이소영 의원과 김병욱 의원까지 "2년 전 위성정당 창당 때와 다르지 않다"거나 "숭고한 민주주의 가치를 능멸할 뿐"이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었다. 하지만 이런 소신 발언은 잊혀지고 다시 민주당 강경파의 목소리만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