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열병식 열고 '핵으로 통일' 노선 시사
신형 ICBM·SLBM 신무기 총동원 핵무력 과시
2022-04-26 조현경 기자
북한이
[매일일보 조현경 기자] 북한이 25일 밤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을 맞아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열었다. 이번 열병식에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물론이고 신형 전술미사일 등 신무기가 총동원됐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열병식에 국가 원수복을 입고 나와 자신들의 핵무기 사용을 더 이상 자위적 목적에 한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핵 선제공격 위협은 물론이고 핵무력을 통한 적화통일 노선까지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보름 뒤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를 겨냥해 초강경 입장을 표명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불과 나흘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높이 평가하며 "남과 북이 정성을 쏟으면 얼마든지 남북관계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변함없는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형적인 남한 내부 갈라치기 수법이다.
▮ "국가이익 침탈한다면 핵 무력 사명 결행"
북한은 26일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대내외 매체를 통해 전날 밤 열병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열병식 연설에서 "우리 핵무력의 기본 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돼 있을 수는 없다"며 "지금 우리 무력은 그 어떤 싸움에도 자신있게 준비되어 있다.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공화국의 핵 무력은 언제든지 자기의 책임적인 사명과 특유의 억제력을 가동할 수 있게 철저히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그동안 자신들의 핵개발이 외세의 침략 등을 막기 위한 '전쟁 억제력 수단'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열병식을 통해 미국과 남한을 겨냥해 핵무기 선제타격도 불사하겠다는 경고를 날린 것.
전문가 사이에선 핵을 통한 무력 적화통일 노선을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부터 언급해 온 선제타격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한국 정부가 북한을 공격해 전쟁이 발발하면 처음부터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북한이 핵무력을 사용해 한반도를 통일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 대해 앞으로 '강 대 강'으로 대응하겠다는 초강경 입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탄두부 더 커진 신형 SLBM 등 핵전력 과시
북한은 이번 열병식에서 지난달 24일 발사했다고 주장하는 신형 ICBM '화성-17형'을 등장시켰다. 이와 관련, 노동신문은 "지난 3월 24일 주체조선의 절대적 힘,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온 세상에 과시하며 만리대공으로 치솟아오른 화성포-17형의 어마어마한 모습을 가까이하는 온 광장이 삽시에 환희와 격정의 도가니로 화하였다"고 선전했다. 신형인 화성-17형 발사 실패 후 기존 미사일로 사기극을 벌였다는 한미 당국 평가를 부인한 셈이다.
또 이번 열병식에는 대남 타격용인 KN-23(북한판 이스칸데르), KN-24(북한판 에이태큼스), KN-25(초대형 방사포) 등 신형 전술미사일들과 극초음속미사일, 신형 SLBM 등도 등장했다. 신형 SLBM은 지난해 1월 노동당 8차 대회 기념 열병식 때 처음 공개된 '북극성-5ㅅ'에 비해 길이가 길어지고 탄두 부분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군과 정보당국은 이번 열병식에 병력 2만 명 이상과 200여 대의 장비를 동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전날 밤 열린 열병식은 오후 9시 30분쯤 조명을 단 드론 혹은 헬리콥터 추정 물체 12개가 평양 상공에 나타난 데 이어 오후 10시부터 불꽃놀이와 함께 군사 행진으로 시작됐다. 특히 이번 열병식 준비 과정에서 물에 뜬 다리 ‘부교’ 2개가 김일성광장과 주체탑 광장 사이 대동강에 놓이고 조명과 폭죽이 설치됐다. 북한은 지난 2020년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부터 이번까지 4차례 열병식을 모두 야간에 개최했는데 이는 화려한 조명과 불꽃놀이로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심야에 개최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