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얼마 전 요즘 유행하는 MBTI 검사를 해보았다. 결과는 ESFJ(사교적 외교관)였다. 질문 몇 개로 나를 판단하는 온라인 검사를 완전히 신뢰하진 않았지만 ESFJ를 나타내는 특성 중‘약속시간에 늦으면 초조하다’를 보면서 크게 공감했다. 나는 평소에 10~15분 전에 약속 장소에서 나가려고 노력한다. 장거리를 이동할 때는 1시간 정도 여유를 두고 출발하기도 한다. 내 타고난 성격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최소한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구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졌다. 우리의 시간은 유한하기에 더욱 소중하다. 약속시간에 늦은 사람이“10분 늦은 것 가지고 뭘 그러냐” 라고 말하는 것은 타인의 시간을 가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타인과의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소중한 시간을 지켜주는 것이며 원만한 인간관계 형성을 위한 기본 조건인 ‘배려’와 ‘존중’을 실천하는 것이다.
60~70년대에 대한민국에만 존재했던 시간이 있었다.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시간을‘코리아 타임’이라 불렀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았던 한국인들을 빗대어 만든 말이었다. 코리아타임이 있는 나라에 시간에 대한 개념이 철저한 외국인들의 적극적인 투자를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당시 한국 사회의 경제적 어려움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인들에 대한 낮은 신뢰도 역시 한몫했을 것이다.
도쿄 올림픽 장관이었던 사쿠라다 요시히코(Sakurada Yoshitaka)도 시간 약속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2019년 있었던 ‘3분 지각 사태’이다. 그는 그 당시 회의 때문에 중의원 예산심의회 야당 질의에 3분 지각했었는데 야당 의원들은 4시간 넘게 질의를 보이콧하고 장관 경질까지 요구했었다. 그는 “앞으로 약속에 5~10분 전 도착하는 사람이 되겠다”며 부끄러운 사과를 두 번이나 해야 했다.
하지만 뛰어난 업적을 남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는 특성이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철저한 시간관념으로 유명했다. 혹자는 그를 시간 관리에 철두철미했던 독일의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에 빗대어‘한국의 칸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작은 약속에 충실한 사람이 큰 약속도 잘 지키며 이런 인물만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연소로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된 존 F. 케네디도 약속 시간에 철저한 것으로 유명하다. “모든 것을 어머니로부터 배웠다”라고 말할 만큼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그의 어머니는 ‘식사시간 준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한 번은 그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가 요트를 타러 바다에 나갔다가 점심시간에 늦을 것 같아서 친구에게 정박을 부탁하고 헤엄쳐서 가족 식사 시간을 지킨 일까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회사, 동호회 같은 사회생활 속에서는 시간을 잘 지키지만 친한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가족모임에서는 종종 늦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너무 친하고 가깝기에 편하게 생각해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방을 더욱 존중해야 하고 약속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 약속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평판을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라는 것을 잊지 말자. MBTI 유형이 ESFJ가 아니더라고 약속시간에 늦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한국국토정보공사 손명훈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