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고유가 시대, 美 '노펙' 이슈까지…또다른 국제분쟁 번지나

미국, 석유 생산 담합 금지 법안 추진해 산유국과 갈등…국내 에너지 안보 불안 중국 경기 하방 위험도 겹쳐…원가절감 차원 각국 산업 내재화로 수출감소 우려도

2022-05-17     이재영 기자
석유
[매일일보 이재영 기자]고유가 상황이 지속되며 산업계의 영업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노펙(NOPEC, No Oil Producing or Exporting Cartels) 이슈로 미국과 산유국간 또다른 분쟁이 발화할 조짐이라 가뜩이나 우크라이나 사태, 중국 경착륙 리스크에 시달리는 산업계가 더욱 피곤해졌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100달러대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산업계에 미칠 부정효과가 커질 것에 대한 관측이 우세하다. 반도체 호황을 누리는 삼성전자도 예외가 아니다.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률은 17.35%, 순이익률은 12.71%로 전분기 각 18.11%, 14.16%보다 낮아졌다. 삼성전자의 이익률은 작년 3분기를 정점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삼성전자의 1분기 각종 연료비는 전분기보다 16.5%나 올랐다. 고유가의 원가상승 부담을 삼성전자도 피해갈 수 없었다. 원가가 밀어올리고 제품가가 버티며 채산성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은 산업 전반에 퍼지고 있다. 지난 4월 수입물가는 전년동월대비 35%나 상승했지만 수출물가는 21.4% 상승에 그쳤다.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에 전가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4월 소비자물가는 석유류 오름세로 전년동월대비 4.8% 상승했고,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도 3.6% 올랐다. 대외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이 확산되고 고유가로 글로벌 인플레 압력이 가중되는 가운데 중국 봉쇄조치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경기 하방 위험을 배경으로 물가부담이 소비침체로 이어질 공산이 커졌다. 첩첩산중으로 고유가는 또다른 국제갈등을 초래할 조짐이다. 미국은 고공행진 중인 유가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산유국들에 증산을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산유국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이들을 압박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 상원 사법위원회는 최근 석유생산 및 수출 카르텔 금지 법안인 '노펙'을 상정해 통과시켰다. 미국은 OPEC 회원국을 반독점법의 면책 대상으로 간주해 OPEC의 석유 생산량 담합을 소송 대상으로 삼지 않았으나, 노펙 법안은 이러한 특권을 폐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법 발효까지는 아직 하원 통과, 바이든 대통령 서명 절차가 남았다. 백악관은 법안이 미칠 국제갈등을 우려하며 소극적인 입장도 보인다. 다만 법안 소송 대상에는 OPEC+에 속한 러시아도 포함돼 정전을 압박할 수단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법안을 승인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국내 산업계로서는 앞서 미국이 이란 석유수출을 통제하면서 국내 정유사가 원유 수급에 차질을 겪었던 만큼 노펙 갈등이 국내 에너지 안보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긴장감을 키운다. 더욱이 최근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경기하방 위험이 커진 상태라 추가적인 지정학적 리스크를 감당하기 버거운 형편이다. 중국은 제로코로나 봉쇄조치를 지속해 4월 생산・소비・수출 등 주요 경제지표가 줄줄이 하락했다. 이 가운데 고유가 압박이 지속되며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산업에서 원가절감을 위한 내재화 시도가 늘어날 것도 국내 소재・부품업종에 부정적이다. 대표적으로 배터리의 경우 중국의 로컬 배터리(LFP)의 저렴한 경쟁력이 부각되면서 자급률 확대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키워 국내 배터리를 위협할 요인이 된다. 삼성SDI가 소형전지의 경우 30% 수준인 배터리 양극활물질의 내재화율을 중대형전지까지 지속 높여가는 등 내재화 움직임으로 기존 소재 납품 중소・중견 업체가 도태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배터리 내재화는 폭스바겐, 테슬라, 포드 등 글로벌 전기차 메이커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는 전략이라 관련 납품 중단 리스크는 피할 수 없게 됐다. 석유화학업종에서는 중국이 과거 고유가 당시 자국 부존자원인 석탄을 활용해 석유화학설비를 확충하는 등 에틸렌・방향족 같은 기초 화학제품의 자급력 확대를 재연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부품・소재 등 주요 산업에서 외국자본 비중을 줄이고 로컬 생산을 확대하는 정책도 원가절감 차원에서 가속화할 전망이라 국내 산업에 걱정을 더한다. 석유화학업계는 또한 산유국과 미국 셰일가스 기반 에탄크래커 등 글로벌 에틸렌 생산시설의 경제성이 고유가로 올라가 설비투자로 이어지며 공급과잉이 심화될 우려도 상존한다. 한편,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국제유가가 100달러 이상 연중 지속될 경우 국내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0.2%포인트 하락하고 물가상승률은 1.3%포인트 상승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에너지수입액이 국가 총수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고유가는 무역수지도 악화시킨다. 1분기만 해도 역대 최대 수출액 1728억달러를 달성했으나 에너지가격 급등으로 무역수지는 적자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