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1기 신도시…정부 '특별법' 제정 속도조절에 단지들 '혼선'
1기 신도시 일부 단지들, 리모델링→재건축으로 선회
“정부의 정비사업 정책 윤곽 드러날 때까지 혼란 계속”
2022-05-22 나광국 기자
[매일일보 나광국 기자] #1기 신도시 정비사업 방식을 놓고 주민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의 A공인중개사는 “세종주공6단지의 경우 리모델링 추진이 무산됐다”며 “가구당 분담금이 예상보다 2배가 오르자 주민들 사이에서 재건축을 하자는 주장이 나왔고, 새 정부에서 용적률 500% 등 규제 완화 이야기가 나오면서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안양시 평촌동 B공인중개사는 “정비사업의 형태를 결정할 때 결국 주민들 입장에선 사업성이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며 “리모델링의 빠른 속도냐, 재건축의 수익이냐를 놓고 입장이 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나 실거주를 목적으로 문의하는 경우에도 최근 인근 단지들이 재건축을 추진하는지 리모델링을 추진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1기 신도시 특별법’의 추진이 늦어지면서, 1기 신도시 아파트 단지들이 재건축과 리모델링 등 정비사업 방식을 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일부 단지들은 정부 출범 이후 별다른 소식이 없자 리모델링을 우선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반대로 일찍이 재건축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리모델링 조합설립을 앞둔 단지 중에는 정부의 ‘1기 신도시 특별별’ 추진 소식에 비대위를 중심으로 재건축사업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중동·산본) 특별법' 공약을 장기과제로 분류했다. 입법이 아닌 관련 논의도 오는 하반기에나 시작하기로 했다. 또 지난달 말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신도시 재건축을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겠다는 언급을 하는 등 재건축 관련 입법 속도조절에 나서는 분위기다. 즉 언제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올지 불투명하다.
공약에 기대를 걸었던 일부 주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또 다른 주민들은 새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 방안으로 재건축 규제 완화를 내세우는 만큼 여전히 기대하는 분위기다. 1기신도시특별법에는 △인허가 절차 간소화 △안전진단 제도 규제 완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도 완화 △토지 용도 변경 및 용적률 상향 △세입자 이주대책과 재정착 대책 등이 있다.
경기도 일산 장성2단지는 리모델링을 추진했지만 최근 새 정부의 규제완화 기조와 ‘1기 신도시 특별법’에 대한 기대감으로 재건축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용적률 500%로 종상향이 되면 70층까지도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경기도 리모델링 사업단지인 ‘일산 백송마을 5단지’도 재건축 동의서를 걷고 있고, 백송 6·7·8·9에선 통합재건축 논의가 진행 중이다.
군포시 산본동 한향수리 아파트도 당초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려다 윤 대통령이 1기 신도시에 대한 규제 완화를 발표한 직후부터 재건축 논의에 착수했고, 현쟁 추진위원회 구성을 위해 찬반 투표를 진행 중이다. 아울러 군포 산본 신도시 내 18개 리모델링 추진 단지로 구성된 '산본리모델링연합회'에선 일부 단지가 재건축으로 전환하는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일부 단지에선 기존대로 리모델링을 고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재건축이 사업 기간 길고, 비용 부담도 큰 만큼 용적률이 200%를 넘으면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이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성남시는 분당구 정자동 느티마을 3·4단지의 리모델링 사업을 승인했다. 또 군포 금정동 율곡주공3단지는 최근 안전진단을 통과하는 등 리모델링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평촌역 인근 C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최근 신도시 단지들 중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단지 가운데 일부는 새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에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1기 신도시 특별법이 얼마나 속도감 있게 진행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기존 계획한대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특별법과 시행령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상향된 용적률에 최대한 맞추게 되면 동간 이격거리, 일조권 무제로 주거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1기 신도시 정비사업 정책과 관련해 구체적인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정비사업 방식을 둘러싼 주민들의 혼란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 “그간 용적률이 높아 리모델링 방식을 추진했던 1기 신도시가 특별법 제정으로 기대감이 커지면서 정비사업 방식을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면서 “최근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1기 신도시 특별법 추진을 공약하고 있는데 정부 차원에서 서둘러 방향을 제시하지 않으면 주민들만 혼란스러워 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