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나는 조금 더 현재의 '길'을 누리고 싶다

2022-06-27     유현희 기자
[매일일보 유현희 기자] 2010년을 전후한 시절 2030의 핫플레이스는 ‘길’이었다. 여전히 ‘길’들은 존재한다. 2010년 무렵의 강북과 강남을 대표하는 ‘길’은 삼청동길과 가로수길이었다. 당시 2030 사이에 유명세를 얻는 레스토랑과 디저트카페들이 앞다퉈 삼청동과 가로수길에 둥지를 틀었다. 디자이너가 직접 운영하는 작은 옷가게와 악세서리 소품점에서는 공장에서 찍어낸 것과는 다른 특별함이 묻어났다. 여전히 삼청동과 가로수길은 존재한다. 그러나 기억 속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10여년 전만해도 이곳을 찾은 이들은 2차선 좁디 좁은 도로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난 작은 골목길 사이사이에서 보물찾기를 하듯 숨은 맛집을 찾아내고 예쁜 소품 가게를 발견할 때면 내심 ‘심봤다’를 외쳤더랬다. 정찰제를 표방했지만 주인과 가격을 놓고 정겨운 흥정이 오갔다. 노포를 운영하는 식당 주인은 정량 대신 후한 인심으로 음식을 담아냈다. 도로는 넓어졌다. 주차시설을 갖춘 현대식 건물도 늘었다. 대기업 화장품 매장이 위풍당당한 규모로 자리를 잡았고 웬만한 글로벌 기업의 외식 브랜드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넓어진 길과 주차시설에 과거보다 쇼핑이나 외식이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편리함보다 상실감이 큰 것은 비단 나뿐일까. 특색을 잃어가는 ‘길’을 볼 때마다 아쉽다. 서울엔 또다른 길들이 생겨난다. 경리단길에 이어 망리단길, 용리단길, 샤로수길이 생겨났고 힙지로와 익선동이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 ‘길’들이 언제 삼청동과 가로수길처럼 변질(?)될지 모를 일이다. 과거 ‘길’이라 명명된 핫플레이스들의 터주대감들은 임대료 인상으로 인해 자본에 밀려 생계의 터전을 떠났다. 2030이 몰리는 길이 ‘돈’이 되기에 자본을 앞세운 기업들의 공세도 그만큼 커진다. 젠트리피케이션이 핫플레이스에서 반복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영업자들은 위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을 막는 데는 역부족인 모양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이 존재하지만 기존 ‘길’의 상인들에게는 보다 강력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길’의 일생은 탄생→성장→젠트리피케이션→변질로 이어진다. 달라진 모습을 외면하는 이가 늘어나면 길의 수명도 끝이다. 떠나온 상인들은 또 다른 터전에서 자리를 잡고 다시 이주하기를 반복한다. 역대 정부는 출범시마다 소상공인 육성을 강조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내몰리는 이들 상당수가 소상공인이다. 그러나 어느 정부든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은 세금 감면, 대출확대, 창업 지원 등으로 쏠림현상이 심각했다. 물론 이 같은 정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 소상공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과연 있었던가. 소상공인이 대기업의 자본에 밀려 짐을 싸지 않아도 되는 정책이 ‘길’의 수명을 늘리고 변질을 막는 지름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