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경력자만 뽑아요'… 신입사원 입사 하늘에 별따기
제약업계, 과학자에 이어 공학자까지 경력직 찾아
중소기업,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신입채용 어려워
대기업 시장 진출, 중기 신입 장벽 높여
2023-06-28 이용 기자
[매일일보 이용 기자] 국내 기업들이 검증된 경력자 채용에 집중하고 신입사원 채용은 배제해 ‘인재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특히 중견중소기업계와 제약업계는 당장 신사업에 투입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신입사원을 육성 대신 5~6년 차 경력의 전문가 모집에 치중하는 상황이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연구개발 사업 등 실무를 담당할 경력직 과학자·공학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바이오 분야가 국내외 투자자의 주목을 받으면서 일부 기업이 신약은 물론 의료기기 분야까지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한 이유에서다.
기존에 필요한 인재는 약학, 한약학, 화학, 생화학, 생물 계열의 석·박사 학위자였지만, 최근에는 AI·디지털 치료제 개발 열풍이 불어 컴퓨터 등 공학 분야 전문가까지 찾는 상황이다.
문제는 관련 학과를 졸업해도 취업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기업 측은 고액 연봉을 받는 연구직 특성상, 당장 실무에 넣을 수 없는 신입을 채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 제약사 인사 담당자는 “의약품은 개발 단계부터 치료 후보물질의 인허가 가능성, 임상 시 대상자 모집 가능 여부 등을 체크해야 한다”며 “최소한 5~6년 이상 정부 및 업계 관계자와 접촉해야 배울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경력자 의존’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기에서는 기존 직원이 떠나면 새 직원을 채용하기 어렵다. 대신 다른 직원이 그 업무까지 맡는데 해당 직원마저 퇴사하면 업무 공백이 심각해진다. 이때, 기업은 신입 채용 대신 당장 실무를 담당할 경력자 영입에 의존하게 된다.
경기 안성의 화장품 제조사 관계자는 “최근 과장급 직원이 퇴사했는데, 그가 맡았던 일이 다양하고 전문적이다 보니 신입을 채용해도 업무 공백을 메울 수 없다. 과거에 퇴사한 경력 직원에게도 연락을 돌리며 재입사를 권유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관계자는 영입된 경력직들은 보통 더 높은 연봉을 받는 만큼, 신입 채용은 더욱 엄두를 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최근 일부 대기업이 유통 플랫폼을 강화하기 위한 IT 경력자 채용에 집중하면서 벤처 기업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나온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대면 사업’ 확산으로 네이버와 쿠팡 등 중·대형 IT 기업들은 최근 경력 개발자 채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네이버는 올해 채용을 경력직 중심으로 바꾸고 신규 채용은 500~700명으로 축소할 방침이다. 지난해 채용 규모(1100명 이상)에 비해 70% 수준이다. 마켓컬리 또한 지난 4월 경력직 개발자를 채용한 바 있다.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한 SSG닷컴은 해당 분야에 신세계그룹의 주 35시간 근무제도를 도입했고, 우수 직원 스톡옵션 부여, 판교 사옥을 강남으로 이전하는 방안 등을 내세우며 경력자 채용에 집중하고 있다.
판교의 한 벤처 IT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은 중기 5~6년 차 경력직에게 높은 연봉과 다양한 복지혜택을 제시해 인재를 빼가고 있다”며 “이직이 잦은 벤처 특성상 기존 직원이 떠나면 신입사원을 키울 여력이 없다. 차라리 타 스타트업의 경력자를 영입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산업계 전반에 만연한 경력자 우대 현상이 고착되면 핵심 인력 부족이 해소되지 않고, 차세대 인재들의 실력 부족으로 연결돼 향후 국내 산업 수준이 감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