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세계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의 끝자락에서 인플레이션(Inflation │ 물가 상승) 압박과 경기 침체의 조짐이 극명한 가운데 경제의 추운 겨울에 접어들고 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풀린 유동성(Liquidity)은 인플레이션을 조장하게 됐고, 러시아의 침공으로 야기된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와 중국 봉쇄조치 등이 더해져 글로벌 공급망(Supply chain)의 악화로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의 급등에 따른 공급 축소로 경기침체를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 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으로 옮겨가고 있다.
지난 6월 10일(현지 시각) 미국 노동부가 밝힌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동기 대비 8.6% 올랐다. 1981년 12월 이후 4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Fed)은 지난 5월 4일(현지 시각) ‘빅 스텝(Big step │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의 금리 인상(연 0.25~0.5% → 연 0.75~1%)에 이어 6월 15일(현지 시각)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의 금리 인상(연 0.75~1.00% → 연 1.50~1.75%)이라는 고강도 긴축 돌입으로 현재 1.75%인 한국의 기준금리는 미국 정책금리 상단 1.75%와 같아졌고 다음 달에는 금리 역전 현상마저 우려된다. 우선은 경기 회복의 속도를 늦추더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정책 의지를 보여주고 앞으로도 강도 높은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 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고물가(7월 5일│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 6.0%)·고금리(5월 26일│기준금리 인상 1.75%)·고환율(7월 6일│원·달러 환율 1,310원)이라는 3고(高)의 ‘트리플(Triple) 상승’에 속수무책으로 한꺼번에 내몰리면서 그야말로 사면초가(四周围楚歌)의 형국으로 빠져들었다. 무엇보다도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그야말로 천정부지를 넘어 지붕 위를 걷다 못해 하늘 위를 나를 듯 매섭게 치솟고 있다. 문제는 통계청이 7월 5일 발표한 ‘2022년 6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6%, 전년 동월 대비 6.0% 각각 상승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1월의 6.8% 이후 23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최근의 월별 소비자물가 상승률 추이를 보면, 지난해 10월(3.2%) 9년 8개월 만에 3%대로 올라선 뒤 11월(3.8%), 12월(3.7%), 올해 1월(3.6%), 2월(3.7%)까지 5개월 연속 3%대를 보이다가 3월(4.1%)과 4월(4.8%)에 4%선을 돌파했다. 이어서 5월(5.4%)에 5%대 상승률을 기록했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9월 이후 13년 8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에 6% 선에 다다르면서 IMF 외환위기 수준으로 악화한 것이다. 체감 물가를 나타내는 생활물가지수도 1년 전보다 7.4% 오르면서 1998년 11월 10.4% 이후 23년 7개월 만에 가장 급격하게 치솟았다. 결코 가볍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경제의 추운 겨울은 더욱 혹독하고 더욱 잔인하고 더욱 오래갈 것 같다. 가계·기업 양측 모두에 버블(Bubble)이 너무 많이 끼어있는 데다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동성이 축소되면 실상이 드러나게 되겠지만 소비나 투자의 부정적 영향은 오래갈 것만 같다.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늘어난데다 물가 상승까지 겹쳐 서민층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그야말로 목전에 급박한 ‘경제위기 태풍’이 몰아닥치고 있다. 당연히 부채 디레버리징(Deleveraging │ 축소) 과정은 더욱더 고통스럽다. 금융사들이 도산하면서 고통받는 금융위기 형태는 아니겠지만 거시적 불황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올해 상반기 무역수지가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7월 1일 발표한 “2022년6월 및 상반기 수출입 동향”을 보면,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6% 증가한 3,503억 달러, 수입은 26.2% 늘어난 3,606억 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올해 상반기 무역수지는 103억 달러(약 13조 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상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 같은 적자 규모는 상ㆍ하반기를 통틀어도 한국이 사상 최대 무역적자에 시달리던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의 91억6,000만 달러 이후 25년 만의 현상이다. 월별로도 지난 6월 무역적자가 24억7,000만 달러에 달해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갔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6월부터 9월까지 이후 14년 만일 정도로 역대급 무역 역조다.
수출은 역대 최대실적으로 수출 증가세를 보였으나, 에너지와 원자재가격 급등에다 원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입액 폭증으로 수출보다 수입이 훨씬 많았던 탓이다. 더 상세히 들여다보면 15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이던 수출이 화물연대 파업으로 생산과 출하에 차질이 생기면서 자동차와 일반기계 수출이 감소하면서 지난달 수출이 5.4% 늘어나는 데 그친 데 반해, 원유·가스·석탄 3대 에너지원의 수입 증가액은 매달 무역적자 규모를 웃돌 정도로 증가했다. 최근 1년 만에 원유 가격은 1.6배, 가스 가격은 3.3배, 석탄 가격은 3.5배로 급등하면서 상반기 수입액이 전년 동기보다 87.5%인 무려 410억 달러나 늘어나 879억 달러에 달한데다 국외 원자재와 곡물 가격상승 여파로 이들 수입액이 늘어났고 원·달러 환율마저 급등해 원화 환산 수입액을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무역적자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화로 만성화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하반기에도 수출 둔화와 수입 증가세가 이어져 적자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수출 대기업을 상대로 최근 조사한 결과 하반기 수출증가율이 0.5%로 예상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 정세가 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여,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작금의 우리 경제는 미국과 중국의 경기 부진에다 계속되는 글로벌 물류대란으로 교역 여건이 크게 악화한 상태다. 고유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여름철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적자 폭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불안이 고착화 일로를 내달리게 되면 한국은 탈출구를 찾기 어려워진다. 이미 기업들은 올 하반기 주력 분야인 전기·전자, 철강, 석유화학 업종에서 수출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은 우리 경제의 최후 보루다. 수출에 문제가 생겨 무역적자가 이어지게 되면 경상적자로 이어진다. 재정적자와 경상적자 등 ‘쌍둥이 적자’가 구조화한다면 원화 가치가 하락하고 외환 보유액이 감소해 경제위기를 맞을 수 있다. 특히, 경상수지는 무역적자 폭에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 ‘쌍둥이 적자’는 국가 신용등급 하락과 외국인 자금 유출,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원화 가치 하락 등 여러 부작용 초래와 함께 경제활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 수출을 늘리는 근본 대책은 민관이 협력해 경쟁국가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것만이 첩경이다. 기업이 기술 경쟁력을 갖추려면 고급 인재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과감히 규제를 혁파하고 노동·교육·공공 개혁 등을 통해 경제 체질을 바꿔나가야 한다.
경제 풍랑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은 밀려오는 삼각파도를 막을 튼실한 방파제가 필요한 때다. 무역수지를 흑자로 돌리기 위한 긴급대책이 무엇보다 화급하다. 한국은 세계 8위의 무역 대국임에도 중국(25%)·미국(15%)·베트남(9%) 3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전체의 절반이나 된다. 수입국을 다변화하고 수출국도 여러 나라로 분산할 필요가 있다. 악재의 늪에서 위기를 헤쳐나가야 할 지혜가 필요할 때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는 환경 하나하나를 신속히 점검하고, 우리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살피면서 경제안보 핵심 품목을 중심으로 가격과 수급 안정에 정책 역량을 집주(集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에너지 수입을 줄이는 대책이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매우 많은 나라다. 지금의 에너지 위기는 유류세 인하 같은 미봉책으로는 풀기 어렵다.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일 것은 물론 국민이 석유·가스·전기 등의 과소비를 억제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추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소규모 개방 경제일 뿐만 아니라 기축통화국도 아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민간과 정부 부채를 합친 ‘매크로 레버리지(민간·정부 부채의 합)’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54%까지 확대되는 등 자본 유출 위험이 없는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급증하는 ‘매크로 레버리지’를 우리 스스로가 감내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대목이다. 가계 및 기업부채가 이미 임계치를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정부 부채도 빠르게 늘고 있어 선제적 관리가 시급함은 물론 재정 건전성을 키워 선제적 부채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해 말 가계와 기업이 짊어진 민간 부채 총량은 4,540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2배를 넘어섰다. 1,862조1,000억 원의 가계부채는 1년 새 7.80%나 늘어 2,00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고, 909조6,000억 원의 자영업 대출은 연내 1,0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2030 세대의 빚은 지난해 말 475조8,000억 원으로 2년 새 100조 원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부채 문제가 야기되지 않으려면 실질성장률이 실질금리보다 더 높아야만 한다. 고물가에 엎친 데 덮친 격인 무역적자 만성화와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방위적 특단 대책을 서둘러 강구하고 즉시 가동해야 한다. 경제의 혹독한 겨울에 대비해 가혹하리만큼 냉철한 구조 개혁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키워나가야 함은 물론 국가 전체의 펀더멘털(Fundamenta)을 튼실하게 다져나가야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