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채무자 450만명 훌쩍…금리인상에 가계대출 부실화 뇌관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206% 달해...OECD 국가중 5번째
다중채무액도 603조 육박..."부실 폭탄 대책 마련 절실"
2023-07-12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등한 가계부채가 본격적인 금리인상기를 맞아 경제 부실의 뇌관이 될 거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의 ‘2022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 가계와 기업의 부채 규모는 3468조 4000억원이다. 이중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960조 7000억원으로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지난 2019년 말 대비 40.3% 증가한 수준이다. 2021년 4분기(909조 2000억 원)보다도 50조 원 넘게 증가했다.
더욱이 대부업을 포함한 3개 이상의 금융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들의 규모가 크게 늘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더불어민주당 이정문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대부업을 포함 3개 이상 금융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가 35만명 가깝게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부실 위험이 큰 다중채무자는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며 빠르게 증가해 지난해 말 450만명 선까지 증가하면서 정점을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기준 다중채무액도 603조원에 육박하며, 4년 전인 2017년(490조 원) 대비 22.8% 늘었다. 다중채무자 1인당 채무도 같은 기간 1600만 원 늘어 1억 3400만원에 달한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부가 시중은행 대출관리에 나서면서 다중채무자들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 등에서 돈을 빌렸다. 은행과 카드사 등의 다중채무액은 31.6%, 38.2% 늘어난 데 반해 저축은행의 다중채무액은 73.8% 급증했다.
이정문 의원은 "전체적인 연체액 감소는 대출 만기 연장 및 상환유예 조치로 인한 것으로, 9월 유예 조치 종료 후 가계부채 부실화가 대거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가계대출 중에서도 부실 위험이 큰 차주를 맞춤형 지원할 수 있도록 세부적인 차주 통계가 지속 발굴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는 한은도 채무부담 증가에 대한 부실 현실화를 우려한다. 한은의 ‘대출 행태 서베이’ 자료에 따르면 가계 신용위험지수는 지난 분기보다 17포인트 증가한 39로 조사됐다. 한은은 은행 가계대출 금리(잔액 기준)가 지난해 말 3.01%에서 올 5월 말 3.42%로 지속 상승하면서 채무 상환 부담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가계의 소득 대비 부채 비중이 치솟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지난해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하 가계부채 비율)이 206%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8%포인트 넘게 증가한 수치로 지난 2년간 가계 부채는 가처분소득에 견줘 2배 이상 늘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낸 가계부채 분석 자료에 따르면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을 보여주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206.6%였다. 전년보다 8.6%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코로나 이전 가계부채 비율 증가폭에 견줘 2배 이상 크다. 2020년 가계부채 비율도 전년 대비 9.8%포인트 늘었다. 반면 2018년과 2019년 가계부채 비율 증가폭은 3.2%포인트 수준이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소득보다 부채가 2배 이상 늘었다. 2020년과 지난해 가계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4% 수준에 머물렀지만 부채 증가율은 9%를 넘어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가계부채 국제비교를 할 때도 이같은 수치를 사용하는 데, 2020년 기준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OECD국가 중 5번째로 높았다.
장 의원은 “최근 물가 인상에 따른 금리 인상으로 상환 부담이 전보다 늘어났다”며 “가계가 부채보다 소득이 늘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회생·파산 제도를 개선해 만약에 사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가계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는 점을 감안해 정부가 최악을 상정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금리가 오르고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는 저신용, 부채 과다 가계와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한미 간 금리 격차 축소에만 집중해 가계부채 상황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면서 "오는 9월 이자 상환 유예 종료를 맞는 자영업자 대출 등, 대출 부실 가능성을 더 잘 들여다봐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