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그동안 우리 사회는 검찰·경찰·국정원 등 수사기관의 요구에 전기통신사업자는 통신자료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고, 수사기관은 광범위하게 이용해왔다. 지난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정치·언론계를 대상으로 수차례에 걸쳐 통신조회를 진행하며 ‘사찰 논란’이 불거진 뒤 한국형사소송법학회가 제기한 헌법소원과 2016년 참여연대 등이 낸 4건의 헌법소원 사건을 병합해 심리한 ‘수사기관 등에 의한 통신자료 제공요청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관련 법인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을 재판관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경찰 등 수사 주체가 ‘수사 편의’를 위해 ‘수사 보안’을 명분으로 통신자료를 수백만 건씩 무차별적으로 조회하고 쓸어 담던 ‘수사 관행’에 제동을 건 것으로 이번 결정이 수사기관의 ‘깜깜이 통신정보 수집’ 관행에 경종을 울리길 바란다.
헌법재판소는 2022년 7월 21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수사기관 등에 의한 통신자료 취득행위에 대한 심판청구에 대하여는 각하하는 한편, 그 근거 조항인 「전기통신사업법」(2010. 3. 22. 법률 제10166호로 전부 개정된 것) 제83조 제3항 중‘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군 수사기관의 장을 포함한다), 정보수사기관의 장의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 방지를 위한 정보수집을 위한 통신자료 제공요청’에 관한 부분에 대하여는 ‘사후통지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것이 적법절차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2023. 12. 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을 명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였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만시지탄(晩時之歎 │ 때늦은 탄식)의 감이 없지 않은 뒤늦은 결정이긴 하지만 일단 반기고 환영할 일이다. 우선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즉각 무효화할 경우 빚어질 혼란을 고려해 내년 12월 31일까지 대체입법을 마련하도록 한 것이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영장 없는 통신자료 취득 자체는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통지 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부분만 위헌이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통신자료 취득 과정에서 ‘사후통지절차’를 두지 않은 것은 정보 주체인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하고,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통제장치를 마련하라는 취지이긴 하지만, 영장 없는 통신자료 취득 자체를 ‘임의수사’로 간주해 위헌성이 없다고 본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제83조(통신비밀의 보호)는 제1항에서 “누구든지 전기통신사업자가 취급 중에 있는 통신의 비밀을 침해하거나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제2항에서 “전기통신업무에 종사하는 사람 또는 종사하였던 사람은 그 재직 중에 통신에 관하여 알게 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한 후, 제3항에서 “전기통신사업자는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군 수사기관의 장, 국세청장 및 지방국세청장을 포함),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재판, 수사(전화, 인터넷 등을 이용한 세금계산서의 발급의무 위반 범칙사건의 조사를 포함),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하여 이용자의 다음 6가지(△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일 또는 해지일)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통신자료제공)을 요청하면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수사를 위해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를 빙자한 통신자료 조회는 마구잡이 관행이자 남용되는 게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공수처는 지난해 수사대상과 무관한 기자, 정치인까지 착·발신 통화내역을 무더기 조회해 불법 사찰 논란을 빚었다. 올해 6월 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78개 전기통신사업자(기간통신 49개사, 부가통신 29개사)가 제출한 2021년 하반기 통신자료 및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통신제한조치 협조 현황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수사기관 등이 보이스피싱이나 납치 피해자 확인 등 신속한 범죄 수사를 위해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공문으로 요청하여 전기통신사업자로부터 취득하게 되는데, 2021년 하반기 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에 협조한 통신자료 제공 건수는 전화번호 수 기준으로 248만1,017건, 문서 수 기준으로 49만6,641건이나 되며, 문서 1건당 전화번호 수는 평균 5.0개로 나타났다. 수사 기관별 제공 건수(전화번호 수 기준)로 보면 △검찰 75만8,229건, △경찰 163만870건, △국정원 1만6,514건, △공수처 6,330건, △기타 기관 6만9,074건 등이다.
최근 10년(2012년∼2021년)간 통신자료 제공 건수(전화번호 수 기준)는 무려 7,827만1,019건으로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연도별로는 △2012년 787만9,588건, △2013년 957만4,659건, △2014년 1,296만7,456건, △2015년 1,057만7,079건, △2016년 827만2,504건, △2017년 630만4,985건, △2018년 614만1,107건, △2019년 602만8,268건, △2020년 548만4,917건, △2021년 504만456건으로 집계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7월 1일 발표한 무선통신서비스 회선 현황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우리나라 휴대폰 회선은 5,553만8,014개라 한다. 지난 10년간 통신자료 조회 건수는 7,827만1,019건으로 휴대폰 회선의 무려 1,4배에 해당한다. 지난 2021년 한 해만도 504만456건으로 국민 10사람당 1명은 통신자료가 조회됨 셈이다.
물론, 통신자료조회는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궁여지책일 수도 있고, 신속한 법적 안정과 정의로운 안전한 사회 구현을 위하여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으나, 문제는 개인은 자신의 정보가 조회되는 사실조차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떤 목적으로 조회되었는지조차도 모르는 데 있다. 통신사, 포털업체들은 개인이 요구해야만 이를 확인해 줄 뿐이고, 가입자는 스스로 조회해보기 전에는 자신의 개인정보가 이들 기관에 제공됐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광범위한 통신자료 조회가 헌법상 영장주의에 반하고 통신비밀과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지적은 수용하지 않았다. 통신자료 조회는 초기 수사의 필요한 수단이고, 임의수사는 영장주의의 예외라는 입장이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영장주의 원칙에 어긋나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통신자료 조회 규정을 삭제하라고 권고한 것에 비하면 한참 축소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는 결론을 내리지 않고 2016년 참여연대 등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때로부터 무려 6여 년을 미적거리다가 이제야 결론을 내렸다.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헌법재판소가 「전기통신사업법」제83조(통신비밀의 보호) 제3항을 즉각 무효화할 경우 빚어질 혼란을 고려해 내년 12월 31일까지 대체입법을 마련하도록 ‘위헌’ 결정’ 대신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지만, 해당 조항의 위헌성을 분명히 한 만큼, 국회는 즉각 후속 입법에 나서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는 부분을 문제 삼았지만, 국회는 여기에만 얽매이지 말고, 보다 더욱 광범위하게 다층적·다각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후통지절차’ 보완만으로 수사·정보기관의 무분별한 통신자료 조회 관행이 근본적으로 바뀔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국정원, 경찰 등 각 수사기관은 통신자료 조회 절차가 까다로워질 경우 수사가 지연되고 초동수사부터 어렵고 힘들어질 것이란 우려는 당연하다. 그러나 수사 편의가 시민의 ‘정보인권’이라는 중대 가치에 결단코 앞설 수는 없다. 수사는 결국 모든 국민의 인권 보호를 위한 과정임에는 틀림이 없겠지만, 대다수 국민이 ‘깜깜이 통신정보 수집’으로 불안하다면, 수사기관의 신뢰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국회는 헌법재판소 주문에 더해 이런 현실까지 감안한 정부의 의견과 여야의 의견을 잘 녹아내어 국민이 만족할만한 개선책을 조속히 마련해야만 한다. 지난 5월 30일 21대 국회 후반기가 시작된 후 무려 53일 만인 지난 7월 22일에야 여야가 원 구성에 합의했다. 무려 두 달 가까이 대한민국 국회는 실종된 셈이었다. 국민은 민주적이며 생산적인 국회를 기다리고 있다. 여야는 법원 영장을 통한 사법적 통제만이 근본 해법임을 각별유념하여 가슴에 새기고 관련 법 조항을 전면 손질해 주길 바란다. 조속한 보완 입법으로 ‘정보인권’을 담보하고 명실상부한 인권 국가로서 국격을 높이길 바란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