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경계가 희미해지는 해외투자

2022-07-25     이재영 기자
[매일일보 이재영 기자]반도체, 전기차 등 디지털 분야에서 미국과 유럽의 선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해외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시장 접근성을 높이고 글로벌 공급망 이슈로 더욱 두터워진 보호무역 장벽을 넘기 위해서라는 전략적 목적엔 공감된다. 하지만 최근 국내 산업경쟁력이 해외로 유출될 것에 대한 염려가 점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시장에서 일본 무라타와 세계 선두를 다투는 삼성전기는 관련 시사점이 비친다. 이 회사의 출발은 한일 합작법인이었다. 1973년 삼성전자가 일본 산요전기와 합작해 설립한 삼성산요파츠가 전신이다. 삼성전자와 산요전기는 합작투자를 통해 기술개발과 성장과정을 함께해오다 1983년 삼성전자가 산요전기 측 지분을 모두 인수해 결별했다. 1987년 삼성전기로 사명을 바꾼 회사는 1988년 국내 최초 초소형 MLCC 개발에 이르기까지 기술성장을 이루게 된다. 물론 이후 삼성전기의 고속성장에는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의 캡티브마켓이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일본 무라타로서는 현재 최대 라이벌인 삼성전기가 한일합작 투자로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못 씁쓸할 수 있다. 국내 대기업이 해외 투자를 늘리는 배경은 각국에서 생산지 규제와 로컬기업과의 차별 정책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자국 투자를 약속한 해외 기업에겐 세제 지원 당근을 줄 것을 약속하며 유인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삼성전자를 마치 자국기업 대하듯 반도체 공급망회의에 툭하면 불러냈던 모습은 걱정을 자아냈다. 내년부터 각국의 입법과정을 거쳐 디지털세가 도입되면 국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해외에 내는 세금이 더 늘어날 것이다. 이들의 해외법인은 현지인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고 앞으로 세금도 현지에 더 많이 내게 되면 국내 기업이란 자각과 인식도 희석될 수 있다.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은 아예 삼성전자를 자국기업처럼 대하기로 내심 결정했는지 모른다. 그나마 유형자산 비중이 높은 기업은 해외투자를 늘린 데도 정체성이 덜 흔들린다. 반면 무형자산 위주의 디지털 플랫폼 기업은 아예 국경과 국적이 사라질 우려가 생긴다. 아직 국내 전문 플랫폼 기업 중에서 디지털세 도입 후 해외 납세가 급증할 만한 사례는 눈에 띄지 않지만 앞으로 그럴만한 방향성은 정해져 있다. 세계적인 추세가 그러한데 우리만 사업보국을 들먹이며 역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해외 진출을 확대하는 데 따른 여러가지 부작용을 충분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중국 등 해외 합작투자해 진출했던 사업들이 현지 합작사의 독자적 성장이란 결과물을 남긴 채 도태됐던 사례들이 여럿 있었다. 해외 투자 시 기술유출에 대한 경계와 주의는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부는 이런 기업들의 더 많은 국내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세제 지원 등 정책적 혜택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각국과 감세경쟁을 벌이며 세수출혈을 감수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그보다 국내 산업이 생산법인의 시장소재지국 접근성을 높이지 않더라도 수출을 늘릴 수 있는 원천기술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고차원적 기술은 산업 소부장 생태계에서 비롯되는 유기적인 협력체계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산업 밸류체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에 근본적인 해법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