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입김에 엎드린 은행들...금리 조정하고 '빚탕감' 행렬

예대차 공시 전 수신금리 줄인상...금융지원 동참도 "정권 초 눈 밖에 날 필요있나"..."관치 도 넘어" 불만도

2023-08-18     이광표 기자
김주현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시중은행들이 정부와 금융당국의 눈치를 살피는데 여념이 없다. 호실적 행진을 거듭하는데도 마냥 달갑지가 않다. 이른바 '이자장사'라는 정치 프레임 공세에 예대금리차 조정에 서둘러 나섰고, 빚 탕감 지원 압박에 은행들 스스로 금융지원 방안을 줄줄이 쏟아내고 있다. 이제 겨우 100일이 지난 정권 초기, 정부의 눈밖에 나서 좋을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오는 22일부터 은행 예대금리차 공시가 의무화 되면서 시중은행들이 수신(예·적금)금리를 연이어 올리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 눈치에 은행들이 고객 편익을 확대하고 있지만, 수신금리 인상이 변동금리 대출 상품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를 함께 끌어올리고 있어 소비자 이자 부담을 더 키우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나은행은 지난 11일 주력 예금 상품인 '하나의 정기예금' 금리를 조정했다. 1·3·6·9·12개월 만기 예치 시 금리를 0.10~0.15%포인트(p) 선에서 인상,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연 3.40%로 조정된다. 우리은행은 12일부터 주력 예금 상품인 ‘WON플러스 예금’에 특별 우대금리 0.30%p를 적용해 1년 만기 기준 최고 연 3.47%로 제공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전달 수신금리 조정을 통해 ‘쏠 편한 정기예금’ 금리를 1년 만기 기준 3.20%로, 국민은행은 ‘KB Star 정기예금’ 금리를 3.12%로 인상해 제공 중이다. 인터넷전문은행들도 인상 움직임에 가세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5일 예·적금 기본 금리를 최대 0.80%p 인상했다.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연 3.10%다. 앞서 케이뱅크는 지난 4일 '주거래우대 자유적금'과 '코드K 자유적금'의 금리를 최고 0.60%p 높여 1년 만기 기준 각각 연 3.20%, 연 2.90% 맞췄다. 은행들의 금리 줄인상은 정부의 이자장사 압박으로 불거진 예대금리차 공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금리인상기를 맞아 은행들이 대출 금리는 빠르게 올리면서도 예·적금 금리 인상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예대금리차를 살펴보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에따라 관련 공시 주기는 3개월에서 1개월로 당겨지고 예대금리차 산출 대상은 잔액이 아닌 신규취급액으로 바뀐다. 이달 취급한 상품부터 금리가 공시될 예정이어서 은행들이 줄인상에 나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입김에 은행들이 금리 조정에 나선 모양새지만, 일각에서는 소비자 비용 부담이 오히려 늘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보통 예금 잔액보다 대출 잔액이 더 커 똑같이 0.10%p 금리가 오르더라도 은행에서 받는 것 보다 은행에 내는 게 더 크다"며 "표면 금리 차이가 줄어든다고 해서 소비자 편익이 늘어나는 구조가 아니다"고 말했다. 은행권을 향한 '이자장사' 프레임은 빚 탕감을 위한 고통분담 압박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압박에 최근들어 은행권은 앞다퉈 취약계층 지원 방안을 내놓는 중이다. 정부 눈치에 ‘생색내기용’ 지원 방안을 내놓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민간과 시장 주도로 경제체제를 바꾸고 관행적인 ‘그림자 규제’를 걷어내겠다던 윤 정부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는 게 더 문제이자 '관치금융'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당초 시중은행들은 소상공인 대출 만기연장 조치 종료에 대비해 차주에 맞는 분할상환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마련해 왔다. 하지만 정부가 갑작스럽게 100조원 넘는 취약차주 금융지원 규모를 떠안으라는 메시지를 내놔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꺼내든 '새출발기금'도 뒷말이 무성하다. 최고 원금 90% 감면 방안이 공개되면서 도덕적 해이 논란은 물론, 은행권의 반발도 샀다. 표면적으론 자율적 지시인데도 은행들이 이를 이행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금융감독원과 공동으로 점검단을 가동한다고 한 점도 논란이 됐다. 빚 탕감 압박은 더욱 노골화되는 모양새다. 최근 은행이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원리금 감면에 일제히 나서고, 수십조원의 상생 프로젝트를 발표한 은행까지 등장한 것도 정부와 금융당국이 밀어붙인 고통분담 압박의 결과물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선 시장주의를 내세운 정부가 주주가 있는 은행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위험한 행보라는 지적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도 엄연한 주식회사인데 부실대출을 이자 유예해주고 정상대출로 만든 뒤 탕감하면 그 자체가 배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알아서 맞추라'는 관치에서 나아가 '이자장사는 나쁘다'는 정치 프레임에 금융업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