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정치는 왜 실패하나]40대 기수론부터 97그룹 세대교체론까지

민주당에선 '어대명'으로 '세대교체론' 약화 이준석·박지현 '청년정치에 이용됐다'...장혜영·류호정도 한계 보여 70년대 '40대 기수론' 김영삼·김대중도 '구상유취' 비판 받아

2023-08-24     박지민 기자
더불어민주당
[매일일보 박지민 기자]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일었던 '세대교체론'의 좌절과 6.1 지방선거 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징계 사태,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비상대책위원장의 퇴진 등 사실상 청년정치가 실패했다고 평가받기까지 그동안 정치권에는 수많은 청년정치 바람이 불었다. 24일 정치권이 보는 가장 최근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는 민주당 '97그룹(90년대 학번·70년대생)'이 일으킨 '세대교체론'이다. 대선 패배 이후 이재명 후보가 당권에 도전한다는 전망이 돌자 당내 비명계(비이재명) 사이에서 '이재명 책임론'이 거론됐다. 이에 친문(재인) 진영의 전해철, 홍영표 의원 등이 잇달아 불출마 선언을 한 뒤 97그룹에서는 강병원 의원을 선두로 이른바 '양강 양박(강병원·강훈식·박주민·박용진)' 인사들이 직접 당권에 도전했다. 하지만 강훈식 의원과 박용진 후보를 제외한 후보들은 1차 컷오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후 이 후보와 강 의원, 박 후보가 최종 후보로 오르며 판세는 '이재명 대 97그룹'으로 굳어지는 듯했지만, 강 의원의 중도사퇴로 이 후보와 박 후보의 2파전으로 이어졌다. 이후 박 후보의 고군분투에도 이 후보가 순회 경선에서 압도적인 누적 득표율을 기록하며 '확대명(확실히 대표는 이재명)' 기류를 굳히자 박 후보가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전 국민의힘 대표, 박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청년정치를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는 사례로 꼽힌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6월 국민의힘 대표로 당선되면서 정치권에 '청년 바람'을 일으켰다. 민주당에서도 25세의 최연소 청와대 청년비서관을 발탁하는 등 청년을 중앙 무대로 등장시켰다. 그러나 이 전 대표는 6·1 지방선거 후 이른바 '성상납 의혹' 문제로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당원권 정지 6개월' 처분을 받은 뒤 사실상 대표직을 상실하며 431일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또 박 전 위원장은 당시 공동비대위원장이었던 윤호중 전 위원장과 마찰을 일으킨 직후 당 대표 출마까지 저지당하면서 밀려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의당의 경우 21대 총선 당시 비례대표로 당선된 장혜영·류호정 의원이 거론된다다. 이들은 청년·여성 대표로 정의당에 영입돼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페미' 정치를 주도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앞서 청년정치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1970년대에는 '40대 기수론'이 있었다. 가장 먼저 '40대 기수론' 바람을 불러온 인물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였던 그는 1971년 대선에 출마했는데, 당시 신민당의 유력 후보는 유진산 총재로 64세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시 42세로 20살 넘게 어린 청년 정치인으로 꼽혔다. 또 40대 기수론의 또 다른 한 축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1971년 47세의 나이로 대선에 출마했다. 40대 기수론'의 본격 확산으로 당시 유 총재의 출마 가능성이 낮아졌고, 급기야 대선 후보 지명권을 요구했으나, 성사되지 못한 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경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이들도 당시에는 정치권 일각으로부터 '정치적 미성년자', '구상유취(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의미)'라는 비난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