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한달 보름간 5.4조 순매수…'바이코리아'
고환율에도 미국계 자금 대거 유입…공매도 청산 흐름도
"이전 매도세 과도"…"낙폭 컸던 주식 저가 분할매수 성격"
2023-08-28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환율 급등과 전 세계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난달 중순 이후 국내 주식시장에서 5조원 넘게 순매수했다.
28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달 14일부터 이달 26일까지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5조3800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올해 코스피에서 줄기차게 주식을 내다 팔던 외국인은 지난달 14일부터 매수 우위를 보이면서 LG에너지솔루션, 삼성전자, 삼성SDI, 현대차, SK하이닉스 등 대형주 위주로 쓸어 담았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원화 가치 급락)하는 동안에도 외국인은 매수세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주에 원·달러 환율이 13년 4개월 만에 1340원을 돌파했으나 외국인은 코스피 주식을 440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이달 들어 외국인이 코스피 주식을 순매도한 날은 이틀 정도에 불과하다.
시장에선 고환율에 과거와 같은 신용위험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외국인이 주식 순매수에 나선 배경으로 미국계 자금 유입을 꼽았다.
염동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원화 약세와 증시 변동성 확대에도 외국인이 매수에 나선 건 다소 의외"라며 "지난달까지 주식을 팔아온 유럽계 자금의 매도세는 둔화하고 미국계와 아시아계 투자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 비중을 국적별로 보면 미국계가 41.2%로 가장 높고, 영국 8.1%, 싱가포르 6.6%, 룩셈부르크 6.4%, 아일랜드 4.3%, 캐나다 2.8%, 노르웨이 2.8% 등 순이다. 유럽계 자금 비중은 30%로 미국 다음으로 높다.
염 연구원은 "최근 2주간 미국의 장기 뮤추얼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로 자금이 유입됐다"며 "미국 자국 내 투자 펀드보다 해외 투자 펀드에 자금이 더 큰 폭으로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들어오는 외국인 자금은 경기회복에 강하게 베팅한다기보다 낙폭과대 주식에 선별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외국인 순매수는 지난 6월 이후 공매도 후 매도 포지션 청산을 위해 주식을 재매입(숏커버링)한 영향도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또 최근 환율 급등이 달러화 초강세 때문이지 우리나라 기초여건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외국인 매도를 자극하는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원화의 가치 하락이 큰 폭의 경기침체나 신용위험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26일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최근 원화 약세는 우리 경제의 기초여건에 대한 신뢰 문제보다 글로벌 달러화 강세 등 주로 대외 요인에 근거한다"며 "원화뿐만 아니라 여타 주요 통화도 약세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25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이후 기자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통화 가치만 절하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외환보유액이나 국가신용도를 우려하는 상황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신용위험을 대변하는 지표들은 큰 폭으로 움직이는 환율과 별개로 매우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며 "1,300원을 넘어선 원/달러 환율 수준만 보면 기초여건(펀더멘털)에 비해 지나치게 앞서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