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나는 하루에 한 번씩 시골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멀리 있는 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효도 방법이다. 어머니는 “아유~, 우리 아들은 전화를 하도 자주 해서 아주 귀찮아 죽겠어. 호호호”라고 매일 이어지는 아들의 전화를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은근히 자랑하기까지 하신다. 간단한 안부 인사와 식사 여부 정도를 묻고 끊는 짧은 전화 통화지만, 잊지 않고 매일 전화를 주는 아들이 고마우신 모양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잦은 전화 통화속에서도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묻거나 들으려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대화 주제는 대부분 아이들이나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식당에 관한 이야기들뿐이었다.
황보름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서 민철엄마라는 인물은 주인공 영주의 부탁으로 독서클럽을 맡게 된다. 클럽명은‘엄마들의 독서클럽’ 민철엄마는 “아내, 엄마가 아닌 자기 이름으로 자기소개를 해보는 게 어떨까요?”라며 클럽맴버들의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처음엔 부끄럽다며 손만 만지던 회원들이 나중엔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하겠다고 나선다. 만나면 늘 남편 얘기, 자식 얘기만 하던 엄마들이 두 시간 동안 자기 얘기만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난 것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시골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그리고 ‘나는 과연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한 적이 있는가?’ 라며 지난 행동들을 반성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결혼과 육아를 거치며 자신을 잃어간다. 누구누구의 남편 누구누구의 엄마로 불리며, 이름 석 자 조차 불릴 기회가 많지 않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머니이기 전에 한 인간이며, 인간은 모두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한 사람의 존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그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어릴 때라고 하지만, 할머니의 이름을 불러본 적도 없고 누군가 할머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다. 외할머니는 항상 OO댁, OO엄마로 불리셨다. 여러분은 할머니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는가?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베스트셀러 ‘인간관계론’의 저자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중요한 사람이 되려는 욕망’이야 말고 인간 본성 중에서도 가장 깊은 충동이라도 말했다. 하지만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신의 이름까지 잊혀져가며 가정과 자식들을 위해 희생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들의 희생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당연시 되어왔다. 요즘 여성인권에 대한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덕분에 여성인권이 예전보다 개선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하지만 어머니의 인권에 대한 이슈는 보지 못한 것 같다. 이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고 어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