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하는 환율에 韓경제 휘청이는데...정부는 '낙관론' 일색
달러당 1400원 향해가는 환율...외환위기 재발 우려도
대책 촉구에도 정부 "기초체력 튼튼" 시장 달래기 급급
2022-09-05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심상치 않다. 원달러 환율은 광복절 연휴를 마친 16일 이후 미·중·유럽 등 각국의 경기침체 우려, 연준 인사들의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발언 등 악재가 터질 때마다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1670원선까지 폭등했다. 외환당국은 구두개입성 메시지를 내보내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 환율 상승을 막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원화 가치는 올들어 세계 주요 통화 가운데 상대적으로 큰 폭으로 하락했다. 4일 블룸버그가 주요 31개 통화의 달러화 대비 등락률을 집계한 결과 원화 가치는 올들어 지난 2일까지 12.75% 떨어져 낙폭이 8번째로 컸다. 특히 선진국 가운데 일본, 스웨덴, 영국 다음으로 4번째로 가치 하락이 컸다. 세계적인 달러 강세의 영향에 무역수지 적자, 경기침체 우려까지 겹치며 원화 가치를 끌어내렸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는 원·달러 환율 고점을 1380원대로 잡았다. 일각에서는 1400원를 전망하기도 한다. 현재로서는 가장 큰 변수는 이달 개최는 미 연준의 공개시장위원회(FOMC)다. FOMC가 다시 한번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할 경우 달러가치가 더 오를 공산이 크다.
환율이 이처럼 계속 급등하면 한국 경제는 여러 방면에서 역풍을 맞게 된다. 우선 국내 물가상승률이 6%대를 웃도는 상황에서 수입물가를 올림으로써 치솟는 물가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된다.
물가 정점이 계속 뒤로 밀리며 인플레이션이 악화될 경우 가계와 기업들은 모두 비용 상승의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물가를 잡기 위해 한은이 금리를 갑자기 올리면 경기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자칫 물가도 잡지 못한 채 경기를 꺼뜨리게 되면 한국 경제는 고환율·고물가·저성장의 '3중고'에 빠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공급망 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는 이런 복합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원달러 환율이 뛰면서 일각에선 1998년처럼 외환위기가 재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고, 지난 1일부터 풀린 돈을 거둬들이는 양적긴축(QT)을 월 국채 6000억달러, MBS 350억달러로 두배 확대하면서 글로벌 달러 유동성이 미국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의 8월 무역수지는 1956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인 94억7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무역수지는 달러화 비상금고인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주요 수단이다. 8월 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364억3000만달러로 전월 말(4386억1000만달러)보다 21억8000만달러 감소했다.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 연속 감소하다가 외환시장 개입 속도 조절 등으로 직전달 소폭 증가하더니 다시 감소세로 돌아간 것이다. 사상 최대 수준인 무역적자는 외환보유액을 더 줄일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 수출마저 급 브레이크가 걸린 상태여서 무역수지 적자 기조도 상당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외환시장의 위기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지만 정부와 당국은 낙관론 일색이다.
정부는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근거로 '괜찮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는 무역수지 적자가 곧바로 경상수지 적자를 증폭시켰지만, 지금은 무역수지 적자와 경상수지가 다르게 나온다"면서 "전체적인 큰 틀에서는 국제기구나 미국 등 주요국에서 우리나라를 평가할 때 외환 건전성에도 문제가 없고 충분한 외화보유액도 있어 괜찮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25일 "IMF 기준으로 외환보유액이 부족하다고 걱정하는데 내가 IMF에서 왔다(과거 IMF에서 일했다는 뜻)"며 "IMF 어느 직원도 우리나라에 적정수준 대비 150%까지 외환보유액을 쌓으라고 얘기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 일부는 1997년 외환위기때도 정부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이 괜찮다고 소리쳤지만 위기는 갑작스레 찾아왔다는 점을 들며 낙관론을 경계하고 있다.
이날 오전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도 추경호 부총리는 "높아진 환율 수준과 달리 대외건전성 지표들은 큰 변화 없이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대표적인 국가 신용 위험도 지표인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 7월 이후 하락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장의 과도한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기조로 보인다.
다만 재계 등 시장 참여자들은 정부의 적극적 대응을 촉구하는 분위기다.
대한상의는 “다른 국가와의 상품·서비스 및 자본 거래의 결과로 발생하는 외환의 유출이 유입보다 크게 돼 국제수지가 악화될 경우 환율이 상승할 수 있다”며 ”최근과 같이 환율 상승이 원자재 수입 부담을 가중시키는 영향이 지속할 경우, 무역수지 적자가 누적되면서 환율이 상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대한상의는 환율 상승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 등 주요국과의 통화 스와프를 통한 외화자금 공급 확대, △수출 기업 금리 등 기업 금융 비용 경감 및 환율 변동 보험 한도 확대, △소비·투자·수출 진작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