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헌법재판소, 남양주 지방자치권 침해 역사적 판결

(전) 남양주시장 조광한

2022-09-05     김동환 기자
[매일일보] 지난 8월 31일 헌법재판소는 경기도가 남양주시의 지방자치권을 침해했다는 역사적 판결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저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이의 정책 가치에 대한 이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20년 4월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지역사랑상품권이 아닌 현금으로 지급한 이후, 7개월 동안 경기도는 남양주시에 대해 9번의 보복성 감사를 했습니다. 탈탈 털어서 내놓은 감사 결과라는 것이 2만5천 원 커피 상품권 10장 총 25만 원을 지원부서 직원에게 지급한 것이 부정부패라며 문제 삼은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권한쟁의심판이었지만 그 판결이 우리 사회와 국가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무겁고 중대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제헌헌법에 규정되었던 지방자치제는 1961년 군사정권에 의해 폐지되었습니다.

1987년 현행 헌법에 다시 도입되면서 겨우 씨앗을 뿌리게 되었으나 기초자치단체가 광역자치단체와 정부의 하위기관 정도로 여전히 인식되고 있고, 이 기반 위에 입맛대로 감사권을 남용하면서
기초자치단체를 하급기관 취급하는 관행이 너무나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인 지방자치제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꽃이자 완성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기초자치단체와 지역주민은 국가의 하위기관이나 부속품이 아닙니다. 국가권력을 분산해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하는 주권자 결단의 핵심 구성체입니다. 지역별 특성에 맞는 법(조례)을 스스로 만들어 국민 복리의 구체적 타당성을 구현하고 공적 인력과 자원을 적절히 배분해 결과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효율적으로 높이는 제도입니다. 결론적으로 기초자치단체는 광역자치단체의 하위조직이 아닙니다. 독립된 공법인으로서 국민 복리를 위한 협력관계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달랐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광역자치단체가 감사를 나오면 감사하는 직원의 간식은 물론 슬리퍼까지 감사장에 준비해야 했던 것이 상징적 사례입니다. 광역자치단체가 상급기관으로 군림하면서 기초자치단체의 내부살림에 비상식적 감사권을 마구 휘두르며 사사건건 간섭하고 징계권으로 길들이기를 하는 관행은 쉽게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현실 속에서 이번 판결은 헌법상 지방자치권의 실체를 명시적으로 확인해 준 역사적 산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판결로 우리나라 지방자치제와 민주주의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226개 전국 기초자치단체는 자치사무에 대해 광역자치단체의 관행을 앞세운 오만방자한 갑질에 비굴하지 않아도 되고 오롯이 기초자치단체에 권력을 위임한 주민의 실질적 권익신장을 위해 자율적 행정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당시의 일을 떠올리면 경기도지사의 안하무인식 횡포와 갑질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함께 서글픔을 느낍니다. 커피 쿠폰 사건에 이어 2020년 11월 경기도는 언론 보도 의혹 사항, 주민 감사청구 및 익명 제보사항 등을 조사하겠다는 명분으로 남양주시의 자치사무에 대해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특별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명분은 그럴싸 했지만 경기도가 최우선적으로 조사한 부분은 계곡 정비나 특별조정교부금 등 정책 관련 언론 기사에 통상 2~3개월 걸쳐 평균 3개 정도의 일회성 댓글을 작성한 직원들이 대상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기도 감사관실은 해당 직원들의 포털사이트 아이디까지 추적하고 사찰했습니다. 또한 하위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수사기관처럼 심문하면서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은 조사받는 동안 식사도 못하고 불안과 불면에 시달렸고 법적으로 보장된 공무원 신분에 
위협과 공포심을 느끼며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외면할 수 없어 시장직을 때려치울 각오로 직원들을 보호하고 반드시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1인 시위에 이어 도지사와 도 감사실 직원들을 직권남용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하였습니다. 그후 위법성이 확실한 도 감사실직원은 승진과 함께 다른부서로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러한 고발 사건도 이번 판결에 근거해 처리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앞으로 기초자치단체와 광역자치단체는 상하 관계가 아닌 대등한 협력관계로 
진정한 지방자치가 실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여, 경기도와 얽힌 여러 가지 사건과 관련해 지역 정치인과 일부 언론이 균형 잡힌 시선으로 
사건을 판단하지 않고 편파적인 태도를 취했던 모습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소망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권한쟁의심판을 담당한 감사관실 직원들을 비롯한 공무원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간 지방행정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두렵고 어려움이 많았을 겁니다.  특히 지역 국회의원 3명(조응천, 김한정, 김용민)이 입장문을 발표하고 일부 시의원들이 가세해 공무원들에게 경기도 조사를 받으라며 몰아붙였기 때문에 심리적 압박도 상당했을 겁니다.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제도의 상징은 지방의회입니다. 역사적으로 행정 권력을 견제하는 시민 권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지역 국회의원들과 일부 시의원들은 스스로 자존감을 포기하고 광역자치단체의 하부 조직원인양 자치권을 주장하는 직원들을 굴복시키려 했습니다.

이번 헌법재판소 판결을 그 누구보다 환영하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야 할 의원들과 단체장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하는 현실은 매우 씁쓸합니다.

여러모로 힘들었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남양주시 직원들이 참으로 의연하게 대처해 주어서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이 대한민국 역사에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는 대단한 일을 했다는 자부심을 갖기 바랍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