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가 만난 신탁전문가] 이계정 “정부가 신탁 공익기능 챙겨야”

이계정 서울대학교 법전원 교수 “신탁, 도산절연성 장점 있어” 연금개혁‧고령사회 해법, 공공수탁기관‧고령자복지신탁 ‘주목’

2023-09-12     김경렬 기자
이계정
[매일일보 김경렬 기자] “제도를 열어줘라. 변호사가 유언대용신탁을 업으로 할 수 있게 시장부터 활성화시켜야한다. 신탁이 활성화되려면 신탁법을 우선하고 자본시장법이 뒷받침해야한다. 그래야 법체계가 통합적으로 움직인다” 12년 간 법봉을 들었던 판사가 2014년 서울대학교에서 교펜을 잡았다. 이계정 법과대학교 교수의 이야기다. 이 교수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출신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시야가 유독 넓다. 이 교수는 판사 시절부터 신탁의 미래를 직감했다. 이 교수는 2002년 한국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이 동아건설산업 주식회사 파산관재인을 상대로 제기한 391억원 규모 약정금 반환 소송의 판결문을 썼다. 당시 신탁 연구가 안 돼 있고, 향후 신탁 사건이 늘 것을 직감했다. 이후 서울대로 돌아와 ‘신탁의 기본 법리에 관한 연구’를 쓰고,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교수는 지금이 신탁에 주목할 때라고 강조했다. 신탁은 부가 축적되지 않으면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군 이래 가장 큰 부를 누리고 있는 지금이 적기라는 입장이다. 이 교수는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넘김으로써 죽은 후에도 자기의 돈이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다. ‘dead hand control(지속적인 재산관리기능)’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신탁의 핵심이다”고 했다. 이 교수는 신탁은 안전한 비히클(vehicle)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타인에 신탁을 통해 재산을 이전한다는 것은 파산한다고 하더라도 강제집행을 당하지 않는 안전자산이 생긴다는 의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신탁의 공익적 기능에 주목했다. 그는 ‘고령자 복지 신탁’, '결혼‧양육 지원 신탁‘을 활용해 저출산, 고령화, 노인빈곤 등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신탁은 나이든 사람이 갖고 있는 잉여재산을 결혼, 출산, 자녀양육비 등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일본에서도 ‘결혼‧양육 지원 신탁’을 활용하고 있는데 비과세라서 수요가 상당하다”며 “국가가 신탁 제도를 정비하고 누구나 신탁을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공공 수탁 기관을 만들어야한다. 연금 개혁을 위해서는 공적재원의 투입에만 의존하지 않고 사적재원 투입도 고민해야하는데, 신탁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아직 신탁이 갈 길은 멀다고 했다. 그는 “주택금융공사에서 작년 6월부터 신탁방식의 주택연금 제도를 시행해 고령자 복지 신탁의 첫 삽을 떴다. 이러한 논의를 확장해야한다”고 피력했다. 이 교수는 신탁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신탁 사건이 늘어날 분야는 유언대용신탁이다. 변호사 업무에서도 미개척분야라 블루오션이다”며 “부동산 개발신탁과 담보신탁도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개발은 큰돈이 오가기 때문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도산절연성이 있는 신탁을 써야한다. 담보신탁 역시 빠른 대출금 회수 장점이 있어 계속 활용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신탁의 매력을 ‘모호함 속에 숨은 정교함’이라고 했다. 신탁은 상황에 따라 바꿔 움직이기 때문에 유연하다. 그는 “법을 접할 때는 법리와 실무의 조화를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 신탁은 우리 법체계에서는 다소 이질적이라 지나치게 다른 면을 강조하면 실무를 어렵게 할 수 있다”며 “사회문제 해결 등 신탁의 유용한 기능을 확장하기 위해서 2011년 신탁법을 개정했다. 현시점에서는 신탁에 대해 유용하다고 판단한 상황이기 때문에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