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계청이 내놓은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7월 생산과 소비, 투자가 일제히 줄어 '트리플 감소'를 기록했다.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지수(계절조정)는 117.9(2015년=100)로 -0.3%를 기록했다. 소비 감소는 올해 3월부터 다섯 달째로 통계가 작성된 1995년 이래 처음이다. 비록 정부는 소비 회복 흐름이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평가했지만, 한국은행 등 금융주체들의 전망은 밝지 않다.
고물가와 고금리에 의한 경제 불확실성도 커지는 양상이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3.4%) 경기도 좋지 않다. 실제 앞으로의 경기를 예측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9.4로 0.3%포인트(p) 하락했다. 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얘기다.
먹거리 물가도 명절 이후 줄줄이 인상된다. 출하량 감소와 태풍 피해 등으로 고추나 파프리카 등 각종 채소가격 인상이 불가피해 보인다. 농심은 원가 부담 등을 이유로 26개 라면 브랜드의 가격을 15일부터 평균 11.3% 올리기로 했다. 국내 원유가격이 오르면서 빵과 아이스크림 가격이 오르는 '밀크플레이션' 가능성도 제기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국제 곡물 가격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데다, 원/달러 환율마저 폭등하면서 재료 수입단가가 예상보다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원가부담이 커진다는 것은 결국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 위축으로 귀결된다. 경기회복의 속도가 예상보다 한층 느려질 것으로 보는 이유다.
악재는 더 많다. 제11호 태풍 힌남로는 막대한 피해를 남겼고, 방역당국은 올 가을 코로나와 '계절독감(인플루엔자)'이 동시에 유행하는 이른바 '트윈데믹(twindemic)'을 경고했다. 여기에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3연속 '자이언트 스텝(한번에 0.75%포인트 금리인상)'을 전망하는 관측이 많다. 한미간 금리 차이는 자본시장 위기감 고조의 기본적 요인이다. 물가와 수출 등 무역수지, 금융시장, 소비·생산·투자 등 큰 경제바퀴 모두 삐걱거리고 있다. 조만간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현실화 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번 추석 명절 정치권의 메시지는 오로지 '민생'이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국민 우선, 민생 제일'을 외쳤다. 그런데 정치 현실을 보면 그게 과연 가능할까 싶다. 국민의힘은 당장 14일 당헌·당규 수정 후의 비상대책위원회 가처분 결정을 봐야 하고,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수사의 역공으로 김건희 특검법 카드를 놓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명절때 잠깐 민생을 외치다 정치판으로 돌아가서는 또 다시 권력 투쟁에 열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그랬다.
정기국회는 개의했고, 내년도 예산안과 세법개정안 등 예산안 부수법안 심사가 조만간 본격화된다. 법안과 예산안 심사 등을 위한 국회 상임위는 열리고, 국정감사도 곧 막이 오른다. 그 속에는 민생과 관련한 각종 제도와 법 정비 과제가 담겨 있다.
비대위니 특검법이니 떠들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추석 명절 민생 제일주의를 외친 정치인들의 언행일치가 이번에는 절실히 필요하다. 다 접고 태풍 피해 지원, 내수 진작, 물가 안정, 수출 활력 제고, 방역 장벽 강화, 금융시장 안정 등에 집중해야 한다.
당 지도부는 누구든 맡으면 되고, 영부인에 대한 의혹 수사는 조금 뒤에 해도 된다. 지금은 국민들의 살 길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다. 정신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