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총든 7살 아이, 다른 장난감이 필요하다

2023-09-21     권대경 기자
"너무 무서운 발표죠. 쉽게 말해 김정은의 마음에 따라 핵무기를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공식화 한 겁니다." 북한의 핵 법제화를 두고 북핵전문가가 한 말이다. 조선중앙통신이 밝힌 5개항의 사용 조건을 보면 매우 공격적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통상 핵무기 보유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들은 핵무기의 선제적 공격보다는 자위적 방어 수단으로서 불가피할 경우 사용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데, 북한의 핵 법제화는 언제든 선제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즉 언제든 전쟁을 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언제든 핵을 사용할 수 있다고 법으로 명시한 셈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일관되게 '한반도 비핵화'를 대북 정책의 기본 기조로 채택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그만큼의 경제적 대가를 포함한 지원을 하겠다는 게 골자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의 면담에서 "북한이 더 나은 길을 선택한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물론 국제금융기구와 동북아까지 북한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인프라 구축을 위한 금융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8·15 경축사에서의 '담대한 구상'의 연장선으로 "핵만 포기하라 그러면 다 해주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핵무기 개발의 단계를 넘어 핵탄두 소형화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핵을 포기할리 만무하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북한은 이제 전 세계에 자신들을 핵보유국으로 대접해 달라며, 자국의 위상이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선상에 놓여지길 원하고 있다. 물론 정부로서는 북한을 공식적으로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기 어렵다. 또 외교적으로도 비핵화 기조에 맞춰 미국을 포함한 동맹국 및 유엔과 공조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야 할 것이다. 전략을 수정할 수 없다면 전술을 바꿔야 한다. 공식적으로는 국제사회에서 지금의 기조를 유지하더라도 내부적으로는 대북 접근법을 바꿔야 한다. 언제까지 '핵을 포기하면…'이라는 단서만 달 것인가.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3차 회의 공동성명에서 명시했듯 강한 채찍을 공식화하면서도, 물밑에서는 북이 핵에 대한 유연한 태도를 가지게끔 유도할 새로운 당근을 제시해야 할 때다. 직접적인 핵 포기를 언급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 핵 포기의 대가로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입장도 그다지 먹혀들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경제·문화적 교류를 점차적으로 확대해 가는 작은 이벤트부터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조금씩 북한에 자본의 온기를 불어 넣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수년 전 외교행사 취재차 베트남 출장을 갔을 때 만난 한 북핵 전문가는 "북한은 적어도 국제사회에서는 쉽게 토라지고 금방 입장이 바뀌고 약속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행태를 반복하면서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요구하는 딱 7살 투정 많은 어린 아이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 7살 어린 아이가 무시무시한 자동소총을 들고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때로는 달래면서 때로는 혼내면서 조심스럽게 총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강한 바람만으로는 외투를 벗게 할 수 없다. 따뜻한 햇볕으로 스스로 외투를 벗게 하는 게 더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