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연지 기자] 한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차별 문제 해결을 위해 연쇄 방미 외교전을 펼치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이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상·하원을 통과해 대통령 서명까지 받은 법을 수정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통상적 접근을 넘어 정무적인 접근으로 미국을 압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0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및 상무부 등을 상대로 한국산 전기차 불이익 문제를 야기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이론·정책적 오류를 지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이날 오전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실무는 그대로 돌아가면서 우리 의견을 반영하고, 저는 이번에 다른 방식으로 협상할 것"이라며 "우리 피해를 호소하거나 항의하는 것보다 IRA나 반도체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이 경제이론적으로, 정책적으로 어떤 문제·오류가 있는지 솔직히 지적하고 (미국) 정부 내에서 논란이 되도록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IRA는 양국 산업부 장관 수준에서 서로 입장을 확인하고 추후 어떤 방향으로 할지 정치적으로 결정할 단계가 있다"며 "통상교섭본부장은 통상규범 취지에서 말하겠지만, 저는 정무적인 장관이기 때문에 좀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간 규범적 접근을 했다면 정치적·정무적으로 접근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따라서 전기차를 전량 한국에서 생산하는 현대차그룹의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반도체법 역시 미국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의 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이 포함돼 있어 한국 기업들이 불이익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미 설득에 모든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이 장관의 방미 역시 한국에 불리한 요소가 담긴 IRA, 반도체법 등 미국 정책에서 불거진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 장관은 "IRA의 본질은 의회가 만든 법이라는 것으로, 행정부 간 협상에서 의회에 직접 영향을 주기 쉽지 않다"며 "정치 논리로 만들어졌기에 경제 논리로 풀어나가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IRA는 아주 빠른 시기에 만들어져서 한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이해 관계국 이해를 수렴하지 못한 면이 있고, 행정부 차원의 노력이 법 개정으로 연결된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게다가 지금은 (중간선거로) 미 정치의 한복판이어서 우리는 통상교범 논리나 정무적·경제정치적 논리로 압박을 가해 소위 군불을 때고, 아랫목이 뜨거워져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박2일 일정으로 워싱턴DC를 찾은 이 장관은 21일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을 비롯해 상·하원 의원 등도 만난다.
이 장관은 특파원 간담회에서 "IRA 이슈로 관계가 어려워지거나 국내 여론이 안 좋아지면 큰 틀에서의 접근에서 정책 모멘텀이 낮아질 수 있고, 소탐대실할 수 있다는 의견을 얘기할 것"이라며 "IRA 조항이 WTO(세계무역기구) 조항 위배라든지 차별적 요소가 있다든지 그 사안 자체로만 접근하면 미국 정부도 설득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했다.
이 장관은 러몬도 장관에게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정치적·정무적으로 한미가 가야 할 큰 그림을 얘기하면서 이 문제에서 제약적인 요소가 나오지 않게 잘 관리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주문을 하면서 IRA 문제도 그런 면에서 빨리 풀어야 한다고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반도체법과 관련해서는 "미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전체 반도체 시장의 불안을 초래하거나 반도체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이는 미국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도훈 외교부 2차관은 이날 호세 페르난데스 미 국무부 경제차관을 만나 IRA 내 전기차 세액공제 개편 내용 중 한국 기업에 차별적 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제안했고, 페르난데스 차관은 가능한 모든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며 한미 간 계속 긴밀히 협의하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