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급증하는 가계·기업부채가 ‘시한폭탄’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가계와 기업이 올해 6월 말 현재 지고 있는 부채의 합계가 4,345조7,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에 이른다는 한국은행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은행이 지난 9월 22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결한 ‘2022년 9월 금융안정보고서’에 의하면 올 2분기 말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신용(자금순환표상 가계·기업 부채의 합) 비율은 221.2%로 전분기보다 0.3%포인트 높아졌다. 부채만 많아진 게 아니라 금리 인상의 여파로 이자 부담까지 급속히 불어나고 있어 적기에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면 금융시스템 부실로 번져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고, 나아가 경제 전반을 위협하는 잠재적 폭탄이 될 것이다.
‘2022년 9월 금융안정보고서’에 의하면 6월 말 기준으로 한국의 가계부채는 1,869조4,000억 원으로 전년동기대비 3.2%나 늘었고, 기업부채는 2,476조3,000억 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0.8%나 늘어났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가계부채 증가세는 다소 둔화되고 있지만 원자재값, 인건비, 전기요금 등 생산비용이 일제히 오른 탓에 기업부채 증가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금리가 더 인상되면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렇듯 기업부채 증가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외 경기둔화, 대출금리 상승, 환율 및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경영여건이 악화될 경우 기업 전반의 이자상환 능력이 약화되면서 올해 ‘한계기업’ 비중과 ‘차입금’ 비중이 각각 18.6%, 19.5%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분기 기준 자영업자 대출은 994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15.8% 증가하며 1,000조 원에 육박한 자영업자 대출은 심각한 위험 요인이 분명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렸지만, 고금리 충격이 새롭게 닥쳤다. 정부가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대출만기,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를 계속 연장하는 바람에 아직까지는 크게 노정되지 않고 있지만 속으로 깊이 곪아가고 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과 ‘빚투(빚을 내서 투자)’ 등 부채가 많은 다중채무자와 청년층의 과도한 빚도 ‘위기의 뇌관’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빚을 내 투자했다가 주식, 가상화폐 가격이 폭락해 졸지에 손해를 본 청년들이 갑자기 회사, 학교에 안 나오고 주변과 연락도 두절되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로 급부각 되고 있다.
더구나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는 지난 9월 21일(현지 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큰 폭으로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 │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올해 들어 세 번째 단행함으로써 미국 기준금리는 3.00% ∼ 3.25%로 현행 한국의 기준금리 2.50%보다 0.50% ∼ 0.75%포인트나 높아져 단숨에 재역전됐다. 올해 남은 두 차례 금리 결정에서도 인상을 계속해 연말에 4%대 중반까지 기준금리를 높일 것으로 보여 당분간 글로벌 경기 침체는 더 길게 이어질 전망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 발생 후 2년 반이나 넘게 누적된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줄이기 위한 출구전략을 서둘러 실행에 옮겨야 할 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자영업자 등에게 대출만기는 3년, 원리금 상환유예는 1년 더 일괄해 늘려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9월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오는 9월 30일 종료되는 소상공인·중소기업 대상 만기 연장·상환유예 조치가 5번째 연장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잠재적인 부실 위험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조치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정상 기업에 투입돼야 할 재원이 회생 가능성 없는 ‘좀비기업’에 쓰여져 금융 부실만 키우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부실기업 수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 비해 24%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9월 13일 한국경제연구원이 김윤경 인천대 교수에게 의뢰해 작성한 ‘기업 구조조정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계기업 수는 총 2,823곳으로 2019년 2,283곳 대비 23.7%인 540곳이나 늘었다.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수치)이 1 미만인 재무 부실기업을 말한다. ‘한계기업’에 종사하는 직원 수도 2019년 24만7,000명에서 지난해 31만4,000명으로 무려 6만7,000명이나 늘었다.
영세 서민과 청년 등 금융취약 계층을 위한 부채 조정을 위한 촘촘한 프로그램들을 서둘러 시행하되, 자영업자를 포함한 기업부채는 금융회사가 재량권을 갖고 옥석을 가려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19 대출을 재연장하더라도 ‘모럴 해저드’ 방지를 위해 이자는 정상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기업 도산은 은행의 건전성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뿐 아니라 실업 확대를 유발하고 이는 가계 소득 및 소비 감소로이어져 생산 및 투자 위축 등 경기 악순환의 온상이 될 수 있다. 지금부터는 정상 기업에 대한 투자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도 ‘한계기업’에 대한 옥석 가리기와 동시에 금융정책 차원을 뛰어넘어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대책 마련을 조속히 강구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폭탄 돌리기 하듯 부실기업 대출을 선별없이 무조건 연장해 주는 것은 멈춰야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